오랜만에 누려보는
느리고 호젓한 산행길이다.
속도를 늦추면
더 많은 것이 보이고
욕심을 버리면
더 많이 느낄 수 있는데...
언제나 빠듯한 일정에 쫒겨
정상만 바라보고 내달리다시피 했으니...
오늘 산행은
강원도 동해시와 삼척시에 걸쳐 있는
무릉계곡 두타산으로 간다.
그런데... 어라?
입장료가 있다고 들었는데...
매표소가 닫혀 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4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이구나^^
액수가 크던 적던...
공짜는 역시 달콤하다ㅋㅋ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부처님 감사합니다ㅎㅎ
오늘 코스는 두타산 정상이 아니라,
'한국의 장가계'라 불릴 정도로 풍광이 빼어난
베틀바위 산성길로 향한다.
그 동안 길이 워낙 험하고
위험구간이 많아서
극소수의 등반가들만이
베틀바위을 보기 위해
무리하게 오르던 길을
동해시에서 정식 등산로로 정비해서
40년만에 전면 개방했다.
베틀바위까지 오르는 길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비록 1시간 남짓되는 짧은 거리지만
오르막과 돌너덜길의 연속이다.
바위투성이의 척박한 땅에서도
하늘을 향해 굵고 붉은 둥치를
힘차게 뻗어 올린
금강송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베틀바위 전망대로 향하는
데크 계단을 오르던 중,
뒤를 돌아본다.
까마득한 오르막 경사에
다리는 후들거리고 숨이 차오른다.
역시나 자연은 우리 인간에게
비경을 절대 쉽게 내어주는 법이 없다.
마지막 계단을 올라서자,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깍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송곳처럼 뾰족뾰족 솟아 오른 암봉들,
그 틈새를 비집고 살아가고 있는 금강송들....
그야말로 절경이다.
하늘을 뚫을 듯
거침없이 치솟은 봉우리들 앞에서
입이 쉬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우리나라 산에서
이런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물론 규모로 치자면
중국의 비경 장가계에 비할 바가 못되지만,
베틀바위만 놓고 보면
'한국의 장가계'라는 수식어도
무리는 아닐 듯 싶다.
옛날 삼베를 짜던 베틀을 닮아서
'베틀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데...
으음... 글쎄...
내가 상상력이 부족해서 그런가?
아주 어릴적 베틀을 본 기억이 있긴 한데...
저 암봉들을 바라보고 있어도
나로서는 베틀이 연상되지 않으니...
이거야 원...ㅋㅋ
베틀바위 전망대에서 200미터 쯤 올라가니
미륵바위가 우뚝서서 세상을 굽어보고 있다.
보는 방향에 따라
미륵불, 부엉이, 선비의 형상으로 보인다는데...
내 눈에는
미륵불도 보이고 부엉이도 보이지만,
선비는 도통 보이질 않는다.
외출 중인가?ㅋㅋ
미륵바위를 지나
두타산 협곡 마천루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100미터 정도 오르니
산책로 같은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숲길을 따라 걷는 발걸음도 경괘하고
기분도 상쾌하다.
산행객들이 쌓아 놓은 듯한
돌탑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무엇을 기원하며 쌓았을까?
길을 가던 산행객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계곡을 만났다.
산성 12폭포다.
직선으로 쭉 뻗어내린 계곡이
바위 위에서 12번을 꺾여
크고 작은 폭포를 이루었다.
산성 12폭포를 지나면
'금강 바윗길'로 이어진다.
베틀바위 산성길에 뒤이어 개장한 길로
'두타산협곡 마천루'로 가는 길이다.
산에서 이런 동굴만 보면
나는 무장공비가 먼저 떠오른다.
어릴적 반공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ㅋㅋㅋ
바위 위에서 홀로 뛰어 놀고 있는
다람쥐와 마주쳤다.
보통의 다람쥐 같으면
벌써 줄행랑을 쳤을 터인데
저도 내가 신기했던지
물끄러미 바라 보기만 한다.
뻔뻔한 놈인지...
아니면 간이 심하게 부은 놈인지...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는 태도다.
길이 좀 지루해진다 싶을 즈음,
지난해 최초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두타산 협곡 마천루에 도달한다.
깊은 협곡을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청옥산의 거대한 석벽들과
아찔한 수직의 벼랑이 그야말로 압권이다.
두타산 협곡 마천루는
두타산과 청옥산이 이루는 협곡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를 칭하며,
마천루는
주변에 치솟아 있는 거대한 바위들이
마치 빌딩 숲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협곡 너머로
용추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
아스라하게 보인다.
녹음으로 우거진 5월의 풍경도
절대비경이지만,
겨울 설경은 어떨까?
또 단풍의 계절은...
벌써부터 조바심이 밀려온다.
두타산...
앞으로 몇 번은 더 찾아와야 될 듯.
마천루 전망대에서 내려와
까마득한 절벽 벼랑에 난 잔도길을 따라
암벽의 허리를 딛고 걷는다.
발아래 펼쳐진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다양한 바위 절경들 앞에서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마천루를 뒤로 하고 하산하는 길에
시원하게 쏟아지고 있는
두 개의 물줄기를 만난다.
두타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와
청옥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만나
만들어 낸 쌍폭포다.
힘차게 쏟아지는 물줄기에
모든 근심걱정이 함께 씻겨 나가는 듯하다.
저 암벽들 위로 발바닥바위가 보인다.
사업 성공을 상징한다는데...
올해는 좀...
마음 속으로 기원해 본다ㅎ
마천루에서 내려다 보았던
용추폭포를 눈 앞에서 다시 만난다.
장쾌하게 쏟아지는 물줄기에
가슴 속까지 후련해진다.
산행의 막바지에
1500평 규모의 무릉반석에 올라
계곡물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씻어내며
산행을 마무리한다.
코로나로 인한
야외 마스크 착용의무가 해제되어
간만에 홀가분하게
맑은 공기 듬뿍 들이 마시며
깊어가는 봄날의 풍경을 만끽했던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