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랬던가?
산을 오르는 일은
희망을 품는 것과 인내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고행길이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럼에도 오르는 것은
밑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멋진 풍광이
저 너머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고개를 하나 넘으니
울긋불긋 아름다운 세상이다.
등 뒤에선 땀 방울이 줄줄 흘러 내리지만
그게 무슨 대수랴!!
산 길을 걷는 즐거움 중 하나는
마음을 비우고 어딘가에 집중하는 순간이다.
오랜시간 걷다 보면 문득 자신도 모르게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이 순간 만큼은
세상의 모든 일들이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일이 된다.
자연 속에 파묻혀
그저 내딛는 한발 한발에 집중을 하고
힘을 모으게 된다.
길이 가파르고 험난해 질수록,
또 몸이 고단하고 힘들어 질수록
더욱 더 다른 잡념 따위는 끼어들 틈이 없이
머리는 더욱 맑아지고
그 순간에만 집중하고 몰두하게 된다.
▲ 풍광이 계속해서 바뀌니
지루할 틈이 없다.
파타고니아에서만 볼 수 있다는
랭가나무 숲이다.
신기하게도 이 나무는 같은 나무내에서도
여러가지 색깔의 단풍이 든다고 한다.
▲ 하얀 나무들의 군락이 보인다.
혹시 랭가나무들이
단체로 집단 자살이라도 택했나 싶었는데,
뼈아픈 집단 학살의 현장이란다.
바로 산불의 흔적!!
사람들에게 화재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불에 탄 나무들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봉우리들이 하나 둘 고개를 내민다.
풍경 하나 하나를 눈에 새기 듯 천천히 걷는다.
발 아래 자갈 구르는 소리 조차도 경쾌하게 들린다.
▲ 빙하 녹은 물이 흐르고 있는 피츠로이 강.
사실 강이라기 보다는 개천 정도의 규모다.
▲ 언덕을 또 하나 넘으니
에메랄드 빛 또레 호수와
세로 또레 빙하의 장관이
눈 앞에 시원스레 펼쳐진다.
바로 오늘의 목적지다.
개인적으로 찾아 오는 트래커들의 코스는
보통 여기까지.
호수를 넘어 빙하에 오르기 위해서는
가이드 동행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 또레 산의 삼형제는
여전히 구름에 휩쌓여 있다.
▲ 산 속에서 보는 빙하의 느낌은
페리토 모레노 빙하와는 또 다르다.
그런데 호수 주변에는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파타고니아의 바람 정말 지독하다.
'바람의 땅'이라는 수식어가 괜히 생겨난게 아니다.
거기다 땀까지 식으니 슬슬 추워지기 시작한다.
배낭에서 외투를 꺼내 걸친다.
▲ 사진 한 장 남기고 싶지만
주위엔 부탁할 만한 사람이 없다.
오직 할아버지 한 분만이
저만치 바위에 앉아 계신다.
할아버지께 다가가서 사진 한장 부탁드리고
카메라를 건네 드렸다.
그런데 카메라를 받아든
할아버지의 손이 너무나 떨리신다.
순간 얼마나 미안하고 죄송스럽던지...
괜찮다고 다시 돌려 달려고 할려니
오히려 그게 더 아닌것 같고...
그렇게 해서 남긴 유일한 사진 한 장.
▲ 호수 주변을 거닐며
한참 동안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리다가
포기를 하고 돌아 서려는 순간,
또레 산의 첨탑이 수줍은 듯이
구름 사이로 살며시 고개를 내민다.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 온 이방인을
이대로 그냥 돌려 보내기에는
좀 미안스러웠나 보다.
보이는 만큼의 탄성과
보이지 않는 만큼의 아쉬움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 빙하 한 조각이 물에 떠내려 온 것이 아니라
바람에 떠밀려 온 것 같다.
자신의 모습을 시원스레 보여 주지 않는 건,
아마도 아쉬움과 그리움을 이 곳에 남겨 두고
언젠가는 다시 돌아 오라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안데스의 봉우리엔
긴 하루의 해가 서서히 기울어 가고 있다.
이제 숙소가 있는 엘찰텐 마을을 향해
하산 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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