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 이어 계속됩니다~~
저 숲 속에 쪼그리고 앉아
바람을 피하면서 두 시간을 기다렸다.
그 사이 삶은 계란과 초콜렛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숲 속에 몸을 숨기고 꿈틀거리며 앉아 있다 보니
문득 어릴적 학교에서 받았던
반공 교육이 떠오른다.
내 스스로 생각해 봐도 영락없는 무장공비다ㅋㅋ
만약 이 근처에 군 초소라도 있었더라면
벌써 총 맞았겠다 싶다.
▲ 피츠로이(Fitz Roy) 봉우리는
아직도 구름에 휩쌓여 있다.
이 곳은 날씨가 워낙에 변덕스럽기로 유명해서
구름에 가려지지 않은 모습을 보는 건
엄청난 행운이라고 한다.
사람의 마음이란게 참 간사한 것 같다.
오전에 산을 오를땐 그렇게 싫었던 바람인데...
이젠 더 세찬 바람이 불어와
저 구름들 좀 멀리 날려 버렸으면 좋겠다 싶다.
▲ 나의 간절한 바램이 통했던 것일까?
간절히 바라면 때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서서히 물려가는 구름들...
그리고 그 구름들 사이로
위용을 드러내는 피츠로이...
▲ 푸른 빙하 뒤로
위풍당당한 피츠로이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다.
선명한 봉우리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진다.
▲ 그야말로 장관이다.
마치 세상 저편의 풍경인 듯하다.
그저 아무말 없이
푸른 빙하와 봉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거센 바람 소리만이 나무가지들을 흔들고 있을 뿐,
고요한 정적이 내려 앉았다.
이런 풍경 앞에서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러고 보니 주위에 말을 걸 상대도 없다ㅋㅋ
▲ 만약 신이 조각 작품을 만든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분명 수 많은 이들이 오갔을테지만,
왠지 아무도 모르는 처녀지를 탐방한 듯 한 느낌이다.
마치 어릴적 다락방 깊숙한 곳에
자신만의 보물을 감춰두고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어린애처럼...
한참 동안이나 신이 새겨 놓은 듯 한
조각 작품의 감동에 취해 있다가,
하산을 위한 예정시간을 훌쩍 넘기고서야
겨우 발길을 돌린다.
진정한 여행자라면
헤어지는 일에도 익숙해져야 하지만,
저런 풍광을 남겨두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건 나만이 아닐터...
저 봉우리 어딘가에
내 추억의 한 조각을 묻어두고 가야겠다.
먼 훗날 그 추억의 한 조각을 찾아
다시 돌아 올 수 있도록...
▲ 피츠로이가 서서히 멀어져 간다.
▲ 이제 떠나면 오늘 세찬 바람 속에 걸었던
이 호젓한 산 길도 그리워 지겠지.
▲ 산 너머로 내려다 보고 있는 피츠로이가
마치 손을 흔들며 안녕이라고
마지막 인사라도 하는 듯하다.
안녕!! 피츠로이~
다시 만날 그 날까지...
▲ 피츠로이도 자신을 찾아 준
이방인과의 이별이 아쉬운 듯,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한다.
기후의 신이 자비를 베풀었는지
믿을수 없을 만큼 화창하고 아름다운 날씨다.
이제는 등 뒤에서 밀어주는 바람마저도
상쾌하고 고맙게 느껴진다.
▲ 피츠로이와의 이별이 못내 아쉬워
몇 걸음 떼고 뒤돌아 보기를 반복한다.
돌아 서서 바라 보는 풍경은
눈 앞의 풍경과는 전혀 딴판이다.
우리네 인생 길도 이렇게 산 길처럼
가다 멈춰서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2,30대를 일과 공부의 노예가 되어
오직 앞만 보고 달려 왔던 한국에서의 생활...
주말과 휴일 조차도
오직 일과 공부에만 매달려야 했던 일상이었다.
어느날 문득
그런 다람쥐 챗바퀴 도는 듯 한 생활이 싫어서
도피 아닌 도피로 택했던 외국 생활이
벌써 6년째가 되었다.
이젠 주위도 둘러 보고
뒤도 돌아 보면서 살고 싶다.
내가 걸어온 길이 어떤 발자국을 남겼는지
어떤 모양의 길이었는지...
이 길이 아닌것 같다 싶으면 다시 내려가서
옆 길을 택할 수 있는 여유도 가지고 싶다.
▲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그야말로 한 폭의 수채화다.
가을산의 정취를 만끽하며
사색에 젖어본다.
새소리와 바람소리, 그리고 자갈 밟는 소리만이
이방인의 길동무가 되어준다.
지금 이 순간 걷고 있는 내가 좋고 행복하다.
마음도 가볍다.
무언가 채워야 하고 무언가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없다.
이틀에 걸쳐 오른 엘찰텐에서의 산행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트레킹이었다.
이 곳에서 만난 안데스의 풍광은
아마도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것 같다.
산의 높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곳의 트레킹 코스는
조금 밋밋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걷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왜 이곳을 최고의 트레킹 코스 중
하나로 꼽는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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