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빨렌께 유적을 둘러보고 나서 다시 정글속을 걸어 내려간다.
물론 유적 입구에서 버스를 타면 쉽게 내려갈 수도 있지만
멕시코의 원시림을 느껴보고 싶어 또 다시 홀로 걷는다.
인간이 특정 목적으로 조성한 인공림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생성되어 오랜기간 존재해 온 원시림...
인공적인 개발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자연 그대로의 숲을 만끽하고 싶다.
▲ 역시 바라만 봐도 세월의 흔적과 위용이 느껴진다.
오래된 숲에 가면 오래된 나무를 만난다.
그곳엔 오래된 숲만이 갖는 고유한 정취가 있다.
사실 이번 멕시코로의 여행은 떠나기 전까지도 많은 망설임이 있었다.
이유는 바로 멕시코 정부가 '마피아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래로,
치안에 대해 몇일을 멀다 않고 날아드는 우울한 소식들 때문.
마피아 갱단에 의해 목이 잘린 시체가 몇십구씩 무더기로 발견되는가 하면,
시내 한복판에서 마피아와 경찰간의 총격전이 벌어지고,
더욱이 우리 교민이 총격으로 살해되었다는 불안한 소식들...
이로 인해 멕시코 여행을 취소하거나 목적지를 변경하는 여행자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멕시코로의 여행은 어찌보면 무모해 보일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당초 우려와는 달리 3주동안 멕시코를 여행하면서
어떠한 위협이나 불쾌한 일도 당해 본적이 없었다는 기억이다.
칸쿤에서 메리다까지는 현지인들 틈에 섞여 2등급 버스를 2번이나 이용했고,
메리다에서 멕시코 시티까지는 3번이나 줄곧 야간 버스를 이용해서 이동했다.
하지만 여행 중 내가 만난 멕시코인들은 남미의 어느나라 사람들보다도 친절하고 낙천적이었다.
어쩌면 여행기간 내내 크나큰 행운이 날 따라 다녔는지도 모를 일이긴 하다.
하지만 전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여행자들의 안전이 100% 보장 되는 곳은 없다.
아무리 안전하다고 평가되어 지고 있는 곳이더라도
현지사정 모르는 여행자들을 노리는 검은 그림자는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보면 여행자로서 지켜야 할 기본수칙만 준수한다면
멕시코라고 해서 여행을 못할 정도로 위험한 곳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물론 국경지역이나 북부지역, 또는 일반 여행자들이 가지 않는 코스를 선택한다면야
상황은 전혀 달라질 수도 있지만.
▲ 정글 속에는 어둠도 빨리 찾아온다.
암흑이 세상을 집어 삼키기 전에 모든 채비를 마치고
움막 안으로 몸을 숨긴다.
▲ 정글 속에서의 밤은 길기만 하다.
그나마 전기라도 들어오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딱히 할 일도 없으니 영화 감상에 들어간다.
이런 상황이나 공항에서 몇시간씩 방황해야 할 때를 대비해서
내 노트북에는 항상 영화 몇 편씩이 담겨 있다.
▲ 정글의 밤은 고요하고 적막할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밤새도록 악을 써 대는 곤충들과 이따금씩 울부짓는 듯한 야생동물들의 울음소리는
깊은 잠마저 방해할 정도다.
게다가 지붕은 모기장 위에 야자수 잎만을 얹어 놨기 때문에
모기장 구멍을 통과한 조그만 벌레들이 천장에서 침대 위로 번지점프를 시도하곤 한다.
결국 만약을 대비해 가지고 다니던 침낭을 꺼내서
이 열대 정글 속에서 침낭 안에 머리까지 감추고서야 잠을 청해본다.
▲ 다음날 아침 동이 트기 시작하니 자동으로 눈이 뜨인다.
야생의 아침은 늦잠을 허락하지 않는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바른생활을 강요한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빛의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고목나무에 찰싹 달라붙은 넝쿨식물의 잎이
호기심 많은 이방인의 시선을 고정시킨다.
▲ 밖으로 나가보니 하늘에선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일꾼들이 이른 새벽부터 야자수 잎으로
움막들을 새단장하느라 분주하다.
▲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체크아웃을 하고
빨렌께(Palenque) 시내 구경을 위해 나선다.
빨렌께 인근에는 미솔아(Misol-Ha)나 아구아 아술(Agua Azul) 같이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정글 속 폭포들도 있지만,
이과수 폭포를 통해 이미 폭포의 진수를 맛본 나로서는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
아마도 이과수 폭포가 나의 눈높이를 너무 높여 놨나 보다.
▲ 시내 곳곳에는 마야인들의 조각상이 즐비하다.
▲ 사실 빨렌께 시내에는 볼거리가 없다.
시내 중심도로는 15분이면 다 걸을 수 있을 만큼 조그마한 시골마을이다.
때문에 야간버스를 타고 와서 한나절 유적지를 둘러본 다음,
바로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여행자가 대부분이다.
▲ 거리를 방황하다가 어느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멕시코의 대표음식인 따꼬(Taco)로 점심을 해결한다.
▲ 뭔지는 모르겠으나 고목나무에 고추 같은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나뭇가지가 아닌 몸통에 열매가 바로 열려 있는게 흥미롭다.
▲ 시내 가로수에서조차도 정글의 포스가 느껴진다.
역시나 정글 속에 자리한 도시답게 반얀트리를 가로수로 심어 두었다.
▲ 이곳에도 치킨은 배달이 되는 듯하다ㅎㅎ
▲ 시내를 거닐던 중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다.
앞에 서 있는 트럭이 후진하다가 인도 위에 서 있는 쓰레기통을 살짝 건드렸다.
얼핏 보기엔 아무 이상이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쓰레기통이 전치 2주 정도의 가벼운 상해를 입었다.
멕시코에서는 저 상황이 어떻게 처리되나 하고 주위에서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운전자가 트럭에서 내리더니 스스로 경찰서에 전화를 한다.
조그만 도시라 경찰서가 가까웠는지 아니면 경찰차가 주위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2-3분도 안 되어서 경찰차가 출동한다.
그리고는 곧 바로 사복을 입은 시청 직원들이 달려온다.
또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이번에는 보험회사 직원이 달려온다.
모든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꼼꼼하게 상황을 체크하고 서류를 작성한 후에 해결이 된다.
순간 내 머리속은 마치 해머로 얻어 맞은 듯한 충격에 휩쌓였다.
쓰레기통이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었다면 내 머리속은 전치 20주의 충격을 받았다.
사람이 다친 것도 아니고 큰 재산상의 손해가 발생한 것도 아니다.
어찌보면 그냥 모른체하고 떠났어도 별일이 아닐 듯한 상황이다.
하지만 운전자가 스스로 경찰에 신고를 하고
모든 관계자들이 바로 달려와 확인을 하고 나서야 상황이 종료된다.
왜 난 멕시코는 무법이 판을 치고 멕시코인들은 북미 사람들에 비해
젠틀하지 못하다는 편견과 섭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북미에 비해 낮은 경제수준과 불안한 치안 때문에
멕시코에 대해 잘못된 선입견이 형성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가장 큰 주범은 헐리우드 영화의 영향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멕시코인들은 범죄자나 마약 갱들로 묘사되기 일쑤고
미국인들은 항상 그들을 처리하는 정의의 사도로 등장한다.
어찌보면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뇌당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하기사, 가끔은 한국인들을 미개인처럼 만들어 놓기도 하는 사람들이니까.
▲ 시내 중심에 자리한 중앙공원
이곳 무대에서는 정글속 태양의 열기를 식히는 라이브 음악이 매일밤 울려 퍼진다.
▲ 역시나 11월에는 멕시코 어딜가든 제단이 마련되어져 있다.
'죽은 자들의 날'을 기념하기 위한 제단인 듯하다.
이제 빨렌께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멕시코의 중부도시, 오아하까(Oaxaca)를 가기 위해
또 다시 야간버스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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