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장과는 같은 듯 다른 분위기를 지닌 따리...
짧은 일정 속에서도
굳이 이 곳을 찾은 이유는
따리고성을 에워싸고 있는
창산 트레킹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
창산은 따리고성을 굽어보고 있는...
길이 48km 정도의 히말라야 산맥 끝자락으로
최고봉은 4,000m를 넘는다.
창산이 특별히 매력적인 이유는
해발 2600m의 산 중턱에
산 허리를 감아도는 트레킹 코스가
잘 다듬어져 있기 때문.
이제는 관광지화 된
'천룡팔부'라는 영화 세트장은 나의 관심 밖.
입구에서 전경만 카메라에 담고는
창산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입장료를 납부하러 들른 관리사무소...
어젯밤 같은 숙소에 묵었던
중국의 젊은 여행자들이
먼저 나를 알아보고는 간단한 인사를 건넨다.
'천룡팔부' 영화 세트장에서 시작해서
감통사 쪽으로 하산하기로 코스를 정하고...
관리 사무소를 나와
오른쪽 계단길을 따라 산을 오른다.
본격적인 트레킹 코스까지 오르는 길...
돌 계단이 끝없이 이어진다.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신축 중인 영화 세트장과 따리 시내,
그리고 그 뒤쪽으로
얼하이 호수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어릴적 홍콩영화 속에서 자주 보았던
중국식 무덤.
무덤 뒤에서 강시가 나타나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은 채,
껑충껑충 뛰어 다니던 장면은
아직도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ㅎ
드디어 메인 트레킹 코스인
운유로에 올라 선다.
헐~~
그런데 이게 웬 일??
푹신푹신한 흙길을 기대했건만...
눈 앞에 펼쳐진 길이라고는
물방울 하나 스며들 틈이 없을 정도로
네모 반듯한 대리석이 잘 짜여 맞춰진...
딱딱한 돌길이다.
수직 암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길들...
굽어 내려다 보면
눈 앞이 아찔해질 정도로
몸과 마음을 긴장하게 만든다.
그나저나 참 대단한 중국인들이다.
이 높은 산 중턱에 어떻게 길을 내었을까?
자연파괴라는 면에서 보면 좀 아쉽긴 하지만...
이 높은 곳에서 암벽을 깎아내어 길을 내고
대리석까지 옮겨와 깔아 놓은 걸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소나무 한 그루...
바위 틈을 비집고 뿌리를 내린 것도 대단하지만
세찬 바람에 적응하느라
가지가 한쪽으로만 뻗어 있다.
어릴적 반공교육의 영향 때문일까?
아직도 붉은 글씨만 보면
공산당이 먼저 떠오른다ㅎ
그 당시엔 마을 곳곳의 담벼락마다
붉은 글씨의 '김일성'이나 '공산당'이 들어간
반공구호들이 가득했었다.
걷는 내내 만난 두번째 산객들...
이런 멋진 길이 우리 한국에 있었더라면
길을 걷는 트레커들로 넘쳐났을 텐데...
어찌된 영문인지
길 위에 사람이 없다.
가다 쉬면서 둘러봐도
사람이라고는 도통 보이질 않는다.
중국이라고 해서
등산문화가 없지는 않을 터인데...
대개 케이블 카를 타고 오르는 사람들 뿐이고
등산로는 텅 비어 있다.
마치 붉은 고깃덩어리를 입에 물고 있는 듯 한
악어 형상의 바위를 만났다.
어찌보면 혀를 낼름거리고 있는
뱀의 머리 같기도 하고...ㅎ
가파른 산비탈 위에서
위태롭게 움직이고 있는 물체 하나.
마치 꿈틀거리며 기어가는
벌레를 보는 듯 싶다.
화물용인지 승객용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저런 경사에서 타고 내려올려면
보통 강심장으로는 힘들 듯...ㅎㅎ
해발 2600m의 창산 중턱에 걸쳐 있는 이 길은
구름이 노니는 길이라는 뜻의 '운유로'라 하며,
옥으로 만든 허리띠를 닮았다 해서
'옥대로'라고도 한다.
아마도 고도가 높으니
구름으로 뒤덮혀 있는 날이 많아
운유로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터...
알 수 없는 게 고산의 날씨다.
걷는 동안에도
빗방울이 떨어졌다 개었다를 반복한다.
변덕스런 날씨의 협박에
발걸음은 자꾸만 빨라진다.
이렇게 높고 가파른 곳에
장비가 올라왔을 리는 없고,
사람의 힘으로 길을 냈을 텐데...
어떻게 이리도 평평한 길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길이 너무 평탄하다 보니
트레킹 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산책 나온 기분이다.
걷기에는 사람을 단순하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다.
혼란스럽고 복잡한 마음도
자연 속에 파묻혀 걷기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스르르 정리된다.
드나드는 인원을 체크하는
관리 사무소인 모양인데...
안에서는 직원들이 마주보고 앉아
카드를 하는지... 화투를 치는지...
출입하는 트레커들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그러고 보니 중국에도 화투가 있을까?ㅎㅎ
길의 끝자락에서 계단을 따라 올라본다.
전망대 같은 넓다란 나무 데크가 나타나고...
저 너머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설렘을 가득 안고 위에 올라서 보니...
눈 앞에 펼쳐진 웅장한 협곡...
이름하야 창산대협곡이다.
수량이 많을 때면
협곡을 따라 굽이치는 물줄기와
시원한 폭포수를 감상할 수 있을텐데...
건기라 그런지
협곡이 바짝 말라 있다.
돌계단이나 다리가 있는 걸로 봐서는
협곡을 따라 오를수도 있는 모양이다.
순간,
가슴 속 한켠에서는 오르고 싶은 욕망에
또 다시 방망이질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오늘 밤
야간 열차를 타고 쿤밍으로 가서
내일 아침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하는 관계로
아쉽지만 눈요기로 만족하고
발길을 돌릴 수 밖에... ㅠ.ㅠ
소원을 기원하는 듯 한 빨간 리본이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마치 과거 우리네 시골마을의
당산나무를 보는 듯...
서로 꼭 껴안고 앉아 있는 원숭이 한 쌍...
갇혀있는 신세가 한탄스럽기라도 하 듯
밖을 처다보고 있는 시선이
애처롭기 짝이 없다.
서로의 의지가 없었더라면
버텨내기 힘들었을 감방생활이다.
연못 한 가운데 서 있는 조각상 하나.
멀리서 보기에는
두꺼비 조각상인 줄 알았는데,
다가가 보니 보살상이다.
출렁다리 옆으로는
연인들끼리 사랑의 맹세라도 한 듯한
자물쇠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눈 앞에 나타난 초대형 장기판.
이 산 속에 무슨 장기판이...
조훈현, 이창호의 이름도 보인다.
중국의 산 속에서 보는 한글도 신기하지만,
한국 바둑 프로기사들의 이름이 어떻게 이 곳에...
길을 잘 못 든 걸까?
날은 점점 어둑어둑해지는데
왠지 자꾸만 깊은 산 속으로 빠져 드는 느낌이다.
길가에 무덤들은 즐비하고
어디선가 금방이라도
강시가 튀어 나올 것만 같이
으시시한 분위기가 이어진다ㅎ
낯선 풍경이다.
마치 고슴도치 마냥
등에 향을 잔뜩 꽂고 있는 무덤.
또 그 위에 얹혀진 서류 뭉치는
무슨 의미일까?
홀로 의시시한 분위기의 숲 길을
한참 동안 걸은 후에야 만나게 된
허름한 사원 하나...
오늘 트레킹의 종착지인 감통사다.
잘 다듬어진 산 길을
오롯이 홀로 걸었던 오늘의 도보여행...
여기서 마무리 한다.
"병의 90%는 걷기만 해도 낫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걷기는 단순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질병 예방약이자 치료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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