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oid hiking alone'
홀로 47km의 트레킹을 마치고 나서야
이 경고문구를 발견했다.
분명 트레킹을 시작할 당시에도 있었을텐데
왜 내 눈에는 띄지 않았던건지...
이 곳에서 홀로 트레킹을 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그 만큼 길이 험하고
산 속에는 야생동물들이 많기 때문이다.
일단 산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빠져 나오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갔던 길을 되돌아 나오거나
끝까지 가는 수 밖에 없는 외통수의 길이다.
아니면 구조대에 구조요청을 해야만 한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일정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결과만 놓고 보자면
차라리 몰랐던게 나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ㅎㅎ
어차피 미리 알았더라도
여기까지 와서 트레킹을 포기하지는 않았을테고,
그렇다면 3일내내 두려움을 가슴 한 구석에 품고
걸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대부분의 트레커들은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트레킹을 시작한다.
첫째 날은 10km 지점까지,
둘째 날은 21km 지점까지,
그리고 나머지 이틀 동안 26km를 나눠 걷는 듯하다.
47km의 코스 중 둘째 날 걷게 되는
10km 지점에서 21km 지점까지가 최악의 난코스다.
아찔해 보이는 가파른 길로
몇 개의 산등성을 넘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또 다시 의욕만 앞선 나머지
2박 3일의 무리한 일정으로
산행을 즐기기 보다는
고생만 실컷하고 돌아온 기억이다.
무자비한 생활의 질주 속에서
간절하게 여유를 꿈꿔왔던 지난 날의 삶...
하지만 아직도 얼치기 여행자의
옷을 벗어 던지지 못하고,
무언가에 쫓기는 듯 한
삶을 살고 있는건 아닌가 되돌아 봐야겠다.
나는 언제쯤이나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자연을 만끽하며 세상을 돌아 볼 수 있는
베테랑 여행자가 될 수 있을련지...
▲ 차이나 비치(China Beach)에서 시작해서
포트 렌프루(Port Renfrew)까지 이어지는
47km의 후안 데 푸카(Juan de Fuca) 트레킹 코스.
평소에는 이곳으로 가는
대중 교통 조차 없는 외딴 곳이다.
단지 여름 한철 동안만 하루 한 차례씩
트레일 버스가 트레커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이용자가 많지 않은 탓에
고작 1시간 거리에 요금이 60불이나 된다.
나를 포함해서 6명의 트레커들이 타고 온 버스는
나 혼자만 차이나 비치에 내려주고 떠난다.
아마도 나머지 5명은
나와는 역방향으로 걸을 모양이다.
▲ 트레킹을 시작하기 전에
입구에서 미리 캠핑장 이용료를 납부해야 한다.
특이한 것은 요금을 받는 사람이나
검사하는 사람이 어디에도 없다.
트레커 스스로가 입구에 비치된 봉투 겉면에
자신의 인적사항을 기재하고,
하루 밤에 10불씩 계산해서
봉투 안에 이용료를 넣은 다음,
저 우체통처럼 생긴 빨간 요금통에
자발적으로 넣고 들어가면 된다.
모든게 트레커들의 양심에 맡겨져 있는 셈이다.
물론 이용료를 납부하지 않았을시에는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는 경고문구는 있다.
▲ 대부분의 캐나다 산 속에는 산장이 없어서
야영을 해야하니 짐이 만만치가 않다.
머리를 훌쩍 넘기는 배낭 안에
식량과 텐트 등 캠핑장비까지 담아 놓으니
육중한 무게로 인해서
평지에서는 짊어지고 일어서기조차 힘들다.
▲ 캐나다 대부분의 트레킹 코스에는
저렇게 매 1km마다 표지판이 서 있다.
0km에서 시작해서 47km의 표지판을 만나게 되면
이번 트레킹도 완주를 하게 된다.
▲ 숲 속에 들어서니
풀 향기가 코 속을 자극해 들어온다.
무성하게 우거진 숲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닫혔던 마음이 무장해제된다.
▲ 이 곳에 들어서는 순간,
왜 영화 아바타가 떠오를까?
마치 SF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이다.
▲ 곳곳에서 스릴감 넘치는
서스펜션 브리지도 건너볼 수 있다.
▲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올라간...
밀림 속의 키 큰 나무들이
깊은 그늘을 드리운 숲 길.
그 길을 오롯이 홀로 걸으며
느끼는 충족감이란...
무거운 배낭이 어깨를 짓눌러 오지만
그게 무슨 대수랴?
▲ 나무들을 칭칭 감싸고 있는 이끼들을 보니
밀림 속에 들어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 기발한 아이디어가 만들어 낸
자연친화적인 계단.
이처럼 긴 계단도
콘크리트나 돌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쓰러진 통나무 하나로 간단히 해결했다.
하나의 통나무 위에 홈을 파서 계단으로 만들어 놓았다.
▲ 2km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미스틱 비치(Mystic Beach)
밤새 이 곳에서 야영을 했던 트레커들이
철수를 하느라 분주하다.
▲ 드넓은 태평양을 마주하니
가슴 한 구석이 뻥 뚫리고
온갖 잡념이 차디찬 바닷물에 씻겨나간 느낌이다.
▲ 저 거대하고 단단한 바위 덩어리도
오랜 세월 동안 떨어지는
부드러운 물줄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상처투성이다.
▲ 숲 속에서는 그저 육중한 배낭을 짊어지고
묵묵히 걷는 것 외에는
특별히 자극적인 즐거움도 없는 여정이다.
무거운 수레나 쟁기를 끄는
소나 말이 이런 심정일까?ㅋㅋ
▲ 그나마 가끔씩 만나게 되는 해안가 풍경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아찔한 절벽에서 내려다보는 산 아래 조망은
감탄스러울 정도다.
▲ 9km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베어 비치(Bear Beach)
캐나다 해변가에서는
이처럼 쌓여 있는 통나무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 대부분의 트레커들은
이 곳에서 야영을 하며 첫날 밤을 보내게 된다.
나도 처음에는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이 곳에서 야영을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도착해서 보니 시간이 너무 이르다.
일행이라도 있었더라면
해변가에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혼자 딱히 할 일도 없어
다시 배낭을 메고 무리한 일정에 오른다.
내 생애 최악의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 억겁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파도에 깎여 나간 바위 덩어리.
▲ 험하디 험한 오르막 길을 만났다.
지그재그로 끝도 없이 이어지는
오르막 길을 따라 산 정상에 오르면
다시 지그재그로 내리막 길이 이어진다.
그리고는 어김없이 계곡이 나타나고
계곡을 건너고 나면 또다시 가파른 오르막 길.
정상에 오르고 나면
계속해서 이어지는 내리막 길과 계곡...
10km 지점에서부터 21km 지점까지는
이런 코스가 계속해서 되풀이 된다.
▲ 드디어 21km 지점인
친 비치(Chin Beach)에 도착했다.
10km 지점에서 21km 지점까지는
너무나도 힘들었던 코스라
사진 찍는 것조차 포기하고
황소처럼 묵묵히 걷기만 했다.
오랜만에 육중한 짐을 지고 산을 올랐더니
피로가 몰려온다.
해변가 숲 속에 텐트를 설치하고
집에서 준비해 온 불고기와 밥으로 저녁을 해결한 후,
그대로 쓰러져 잠을 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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