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트레킹 첫째날부터 21km를 걷느라
고단했던 모양이다.
저녁을 먹자마자
거의 쓰러지다시피 텐트 안에 누웠다.
얼핏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오싹한 추위가 느껴져 눈을 떠보니
이제 겨우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태양이 잠든 시간을 틈타서
숲 속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한 낮의 따가운 햇볕을 무색케 하는 냉기가
온 몸을 근방이라도 얼려버릴 태세로
공격해 들어온다.
더구나 텐트가 여름용이다 보니
이방인을 만나 보려는 찬 바람의 방문이 끊이질 않는다.
그 추운 파타고니아에서도
나를 든든하게 지켜 주었던 오리털 침낭조차도
이 곳에서는 맥을 못춘다.
일어나서 등에 핫팩을 하나 붙이고
다시 잠을 청해보지만 어림도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온 몸이 오그라드는 듯한 한기가 느껴진다.
이제 겨우 9월초인데
이 곳은 추워도 너무나 춥다.
속이 떨릴 정도로 춥다.
나는 지금 이해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 앞에서
추위와 한바탕 사투를 벌이고 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자는걸 포기하고 나와서
텐트 앞에 모닥불을 피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곳 야영장이 해변가에 위치해 있어서
모닥불을 피울 수가 있다는 것이다.
▲ 아침까지 밤새도록 모닥불 하나에 의지해서
얼어죽지 않고 살아 남았다ㅎㅎ
오른쪽에 녹색의 둥근 공이 보인다.
이곳 캐나다는 야영장 조차도 50m 이상씩
띄엄띄엄 떨어져서 텐트를 치게 되어 있다.
아마도 사생활 보호 차원인 듯...
해변가를 거닐다가
저런 공을 보고 숲 속으로 따라 들어가면
텐트를 칠 만한 장소가 나온다.
▲ 동이 트고 보니
날씨가 어제와는 전혀 딴판이다.
해변은 짙은 안개 속에 휩싸여 있다.
▲ 야영장마다 이렇게 음식물을 보관할 수 있도록
튼튼한 캐비넷이 마련되어져 있다.
이유는 바로 야생동물 때문.
음식물을 밖에 두게 되면
밤새 음식 냄새를 맡고 접근한 야생동물이
음식을 먹어 치우거나
잘못하다간 사람을 공격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
▲ 다시 길을 나서려면
아침 밥을 든든하게 챙겨 먹어야 하는데
아침부터 라면을 먹을려니 넘어 가지가 않는다.
거의 억지로 밀어 넣는 수준이다.
그래도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느니라^^
어제 하루종일 김치를 배낭 속에 넣고 다녔더니
이미 초김치가 되어 버렸다.
▲ 또 다시 배낭을 들쳐 메고 길을 나선다.
어제 내가 무리를 하기는 했나 보다.
걸을 때마다 온 몸에 알이 밴 듯이
근육이 당겨온다.
▲ 이건 또 뭐야??
길이 없다.
저 바위 위를 기어 올라가야 한다.
사다리라도 하나 만들어 두었으면 좋으련만.
▲ 험한 코스는 어제로 끝난 줄 알았는데...
뒤를 돌아보니 올라 왔던 길이 아찔해 보인다.
여기서 오르다 발이라도 미끄러지는 날에는...
상상만해도 끔찍하다ㅋ
▲ 진흙탕 길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바지며 신발은 이미 흙투성이가 되어 버린지 오래다.
▲ 참 다양한 코스가 있다보니
지루할 틈이 없다.
사다리 밑둥을 고정하고 있는 돌들의 모습이
원시적이라고 해야 하나?
소박하다고 해야 하나?
▲ 부드러운게 결국은 강하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저 약해 보이는 물줄기에 의해
여기저기 패인 바위 덩어리가 안쓰러워 보인다.
도중에 나와는 역방향으로 걷고 있는
캐네디언 커플을 만났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양쪽 등산 스틱에
방울을 달고 딸랑 딸랑 소리를 내며 걷고 있다.
당시엔 저걸 왜 달고 다닐까? 궁금해 하면서도
이유를 물어 보지는 않았다.
트레킹을 모두 마치고나서
인포메이션 센터에 붙어 있는 주의 사항을 보니
트레킹할 때는 몸에 방울을 달고 다니거나
동료들과 큰 소리로 떠들며 다니라고 되어 있다.
헐~ 참 이상도 하다.
처음엔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우리 상식으로는
산행을 할 때 야생동물들이 놀라지 않도록
되도록이면 소란을 피워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달랐다.
야생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사람들과의 접촉을 꺼린다고 한다.
때문에 사람이 온다는 것을 미리 인지했을 때에는
스스로 피해 버리거나
숨어서 사람들이 지나가는걸 지켜만 본다고 한다.
즉, 사람들이 먼저 야생동물들을 자극하거나
위협하지 않는 한,
야생동물들은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용히 다니다가
갑작스럽게 야생동물과 맞딱드렸을 때에는
야생동물들이 놀라서 흥분한 나머지
사람을 공격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산 속을 걸을 때에는 소리를 내서
야생동물들에게 사람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우리나라 산 속에서는
사람을 공격할 만한 맹수들이 많지 않아서
사람이 야생동물을 보호해야 하지만,
캐나다 숲 속에는 맹수들이 많기 때문에
사람을 우선 보호해야 한다는 사고에서 비롯된 듯하다.
남미를 여행할 때에는 사람이 제일 위험하지만,
캐나다에서는 야생동물, 그 중에서도 특히 곰이 가장 위험하다.
요즘은 어찌된건지 곰이 먹이를 찾아 도심까지 내려와서
사람을 공격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때문에 캐나다에서 산 속 트레킹을 할 때에는
곰 퇴치 스프레이를 구비하고 다녀야 한다.
내용물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곰에게 뿌리면 곰이 물러나는 모양이다.
등산용품점 같은 곳에서는
곰 퇴치 스프레이를 대여도 해주고 있다.
일주일 대여비가 15불,
하지만 한번이라도 사용했으면
판매대금인 45불을 지불해야 한다.
▲ 후안 데 푸카 트레킹 코스에서
가장 긴 서스펜션 브리지를 만났다.
다리가 얼마나 출렁이는지
한 사람씩 교대로 건너야할 정도로 스릴 만점이다.
▲ 야생 버섯들이 나무에 더덕더덕 붙어 있다.
주립공원인 이 곳에서는
풀 한 포기 돌맹이 하나도 반출이 금지되어 있다.
▲ 드디어 24km 지점을 통과한다.
전체 47km 코스 중 24km면 이미 절반을 넘어섰다.
하지만 어제 무리를 한 탓인지
이미 지칠대로 지쳐 있는 상태다.
▲ 참 많이도 올라왔다.
왼쪽 아랫부분에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서스펜션 브리지가 까마득하게 내려다 보인다.
▲ 28km 지점에 있는
솜브리오 비치(Sombrio Beach)가 눈에 들어온다.
주변엔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서
운치있는 장면을 연출해 낸다.
▲ 바다 위로 바로 떨어지고 있는 폭포가 보인다.
규모는 비교가 안되지만
제주도의 정방폭포가 떠오른다.
▲ 도대체 이 긴 통나무는 어디서 왔을까?
50m는 족히 되어 보이는 통나무가
해변가에 떡~ 하니 누워 있다.
▲ 솜브리오 비치는
모래와 자갈이 섞인 해변이 2km 가량 펼쳐져 있다.
이곳에도 야영장이 있기 때문에
오늘 밤은 이곳에서 머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오늘은 고작 10km 밖에 걷지 않으면
일정이 다시 3박 4일로 늘어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어제 21km를 걸으며
고생 고생했던 의미가 사라진다는 생각에
다시 배낭을 짊어진다.
무엇보다도 어젯밤에 얼마나 추웠던지
야영하는 기간을 하룻밤이라도 줄이고 싶다.
▲ 헐~~ 이건 또 무슨 시츄에이션??
사다리라도 하나 만들어 두던지
최소한 통나무라도 하나 걸쳐 둘 것이지
나무 밑둥에 로프만 덩그라니 매달아 두었다.
내려 오는 사람이야 좀 낫겠지만
로프에만 의지해서 올라야 하는 사람은
배낭 무게로 인해 보통 힘든게 아니다.
▲ 캠핑장이 있는 40km 지점에 도착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본의 아니게 19km를 걷게 되었다.
사실 오늘은 33km 지점에 있는 캠핑장에서
야영을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33km 지점 캠핑장에 도착한 시간이 4시.
아직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숲 속 한가운데 위치한 캠핑장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잘못하다가는 오늘 밤 숲 속에서
나 홀로 야영을 해야 하는건 아닌지
은근히 걱정이 앞선다.
하는 수 없이 또 다시 무리를 해서
40km 지점에 있는 다음 캠핑장까지 오게 되었다.
▲ 이 곳도 계곡 옆에 위치한 산속 캠핑장이다.
캠핑장에 도착해서 보니
다행히도 이미 두 팀이 와서 저녁을 먹고 있다.
젊은 캐네디언 청년들 3명으로 이루어진 한 팀과
아가씨들 3명으로 이루어진 또 다른 팀,
아무리 봐도 나만 혼자 다니고 있다.
도착하자마자 급하게 서둘러서 텐트를 설치하고 나니
숲 속은 금새 어둠 속에 휩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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