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냘레스에 와서 예기치 않았던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자전거를 타고 마을 외곽 지역에 있는 천연 동굴을 찾아 가던 중,
길 위에서 갑작스럽게 쏟아진 스콜성 폭우를 만났다.
여행할 때마다 배낭속에 일회용 우비를 챙겨가지고 다니지만,
오늘은 배낭조차도 숙소에 두고 오직 카메라 하나만 호주머니에 넣은 채,
빈몸으로 자전거를 끌고 나선 길이었다.
미리 몇방울이라도 떨어뜨려서 귀뜸이라도 좀 해주었으면 좋았으련만...ㅋ
은신처를 찾을 틈도 주지 않고 앞이 안보일 정도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급한 김에 실례를 무릅쓰고 남의 집 앞마당으로 무단침입해서
커다란 나무 밑에 서 있었더니,
주인 아저씨가 나와서 보고는 집으로 들어 오라고 부르신다.
쿠바에서는 다행히도 개인의 총기소유가 금지되었기에 망정이지,
미국이었더라면 남의 집에 무단침입하다 총 맞았을지도 모를 일이다ㅋㅋ
비는 한시간이 넘도록 앞이 안보일 정도로 줄기차게 쏟아진다.
그 덕분에 쿠바의 일반 가정집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침실과 장농까지 열어 보이며
집안 구석구석을 구경시켜 주신다.
참 고맙고 친절했던 분들이다.
그 폭우를 맞고 밖에 서 있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급작스럽기는 비가 개는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순식간에 멈춘다.
작별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서는데,
구경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다시 집에 들리라는 말까지 하신다.
빈말이라도 얼마나 고마운지...ㅋㅋ
바쁘게 일을 하던 농부들이 지나가는 나를 발견하고는
어디서 왔냐고 물으며 포즈를 취해준다.
자전거로 달리면서 보는 풍경들
산들이 참 기이하게도 생겼다.
석회암이 아직도 녹아 내리고 있는 모양이다.
이 곳을 보는 순간 영화 '에일리언'이 떠오른다.
에일리언이 먹잇감 앞에서 입을 쩌~억 벌리고는
정체모를 찐득찍득한 액체를 뚝뚝 떨어뜨리며 서 있던 바로 그 모습ㅋㅋ
한참을 달리고 달려서 산 미겔 동굴에 도착했다.
과거 사탕수수 농장에서 도망쳐 온 흑인 노예들이 숨어 지냈던 곳이다.
동굴 입구에 레스토랑을 만들어 놓고 음식을 판매한다.
이곳이 밤에는 또 나이트클럽으로 변신한다고 한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인디오 동굴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입장료를 냈더니 직원이 하는 말...
방금전에 오늘 마지막 관광객 두명과 가이드가 들어갔으니
빨리 따라가서 그들과 조인하라는 것이다.
그럼 내가 마지막이 아니고 그들이 마지막이야?ㅋㅋ
홀로 동굴 속으로 들어서는데 왠지 분위기가 음산하다.
인디오 동굴은 석회암 동굴로서 1920년에 발견될 당시,
인디오들의 해골과 유물이 발견되어 인디오 동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지방의 인디오들은 과거 스페인 침략자들의 박해를 피해 이곳에서 숨어 지냈다고 한다.
그럼 이 동굴 안에서 오랜 세월동안 많은 사람들이 죽고 묻혔을테니...
한참을 홀로 걸어 들어 갔더니만...
앞서 가던 관광객 두명과 가이드가 멈춰 서 있다.
그런데 어라~~ 누런 흑탕물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동굴 안으로 물이 흐르고 있네.
잠시후 저 멀리 어둠속에서 하얀 물체가 다가온다.
자세히 보니 우리를 태우고 갈 보트다.
여기서부터는 보트를 타고 동굴 내부를 둘러본다.
동굴 천장에는 기이한 형상의 종유석들이 즐비하다.
똑딱이로 담아 보러 몇번을 시도해 봤지만 역시나 무리다.
그러던 중 천장을 향해 똑딱이를 들이대고 있는데,
물방울 하나가 천장에서 뚝 떨어지더니만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똑딱이 렌즈 위에 착륙을 한다.
헐~~넓은 DSLR 렌즈도 아니고 이 쪼그만 똑딱이 렌즈에...일부러 맞출려 해도 힘들겠다ㅋㅋ
이곳 동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머리나 코에 맞으면 행운이 영원히 함께 한다는 속설이 있다는데...
행운은 커녕...ㅋㅋ 이로 인해 멕시코 여행내내 똑딱이가 초첨을 못 맞춰서 고생깨나 했다ㅋㅋ
보트를 타고 동굴 내부를 돌아보는데 채 5분도 안 걸린다.
입장료를 5000원 넘게 냈는데 헐~~ 실망!!
그다지 뭐 볼만한 것도 없는데...
보트는 관광객들을 내려주고 다시 동굴 속으로 유유히 사라진다.
다시 쏟아지기 시작하는 빗속을 뚫고 민박집에 돌아왔더니 저녁이 준비되어 있다.
밖에 나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해도 되지만
민박집에 부탁하면 요리를 해준다.
나만을 위한 저녁상...ㅋㅋ
여기에다 생과일 쥬스와 맥주까지 해서 만원 정도...
요건 랍스타...ㅋㅋ
쿠바에 와서 꼭 맛봐야 할 음식이 랍스타.
정말 저렴하다.
아바나 같은 대도시에서도 15000원 이하면 먹을 수 있고
바닷가 어촌 마을에서는 5-6000원에도 맛볼 수 있다.
물론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분위기 좀 잡을려면 훨씬 비쌀 수도 있지만...
쿠바인들의 식탁에서 빠질수 없는 게 이런 검은 콩을 이용한 스프다.
검은 콩을 불린 뒤에 피망이나 양파 같은 채소를 넣고 같이 끓인 요리다.
우리의 김치 만큼이나 쿠바의 전통 요리에서는 중요한 음식이고,
집집마다 손맛도 약간씩 다르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자고 일어나 보니 날씨는 개였는데
내 카메라는 어제 무단침입한 물방울로 인해 우울하기 짝이 없다.
똑딱이 렌즈 안쪽에 습기가 잔뜩 서려있다.
시원한 에어컨 앞에서는 사라졌다가도 밖에만 나오면
무더운 날씨로 인해 다시 렌즈에 습기가 끼어 버린다ㅠ.ㅠ
무거운 마차를 끌고 가다가도 카메라를 보더니 미안하게도 마차를 세워준다.
생각해보니 소들에게 미안해 해야겠구나ㅋㅋ
카메라를 보고는 차 속에서 포즈를 취해주는 아저씨
가운데 부분이 뿌옅다.
이야~~ 신발 고치는 사람도 있다.
우리도 과거에는 고무신도 본드로 때워 신곤 했는데...ㅋㅋ
아바나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 친구들이 오더니 벨기에 커플과 조인해서 아바나까지 택시로 가지 않겠냐고 묻는다.
그것도 버스비랑 같은 가격으로...ㅋㅋ
이렇게 해서 버스로 4시간 걸리는 거리를 택시로 두시간만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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