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트레킹 5일째.
오늘은
해발 3200m의 데우랄리를 출발해서
4130m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를 찍고
다시 데우랄리로 내려오는 일정이다.
그 동안 같이했던 일행들이
현지에서 급조되다 보니,
산행경험이나 체력, 트레킹 일정이
모두 제각각이다.
산행에서는 남을 의식하지 말고
자신의 체력에 맞춰 페이스를 유지하는게 최선...
일행들과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만나기로 하고
오늘은 나홀로 산행을 시작한다.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게 여행길.
이제는 그런 상황에 익숙해져야 할 때가 되었는데...
아침부터 돌무덩이의 난코스가 시작을 연다.
이제는 해발 고도가 3000m를 넘어가다 보니,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오른다.
히말라야 14좌는
해발 8000m가 넘는
히말라야의 14개 봉우리를 말한다.
그 중에서 안나푸르나는 해발 8019m로서
10번째로 위용을 자랑한다.
산의 위대함은...
거리를 두고
멀리서 바라봐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지만,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게
우리 인간의 마음인가 보다.
설산들이 저만치 손에 잡힐 듯 지척에 보이는데
길은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멀리서는 까마득하게 올려다 보이던 설산들이
조금씩 눈높이에 맞춰져 간다.
데우랄리에서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구간은
급경사로 사고가 잦은 곳이다.
때론 눈사태로 인해서
트레커들이 목숨을 잃기도 한다.
드디어 네팔인들이 신성시 여기는
마차푸차레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차푸차레는
봉우리의 모습이 물고기 꼬리 모양을 하고 있어
'Fish Tail'이라는 별칭도 가지도 있다.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에 도착했다.
해발 3700m...
가슴은 답답하고
뒷머리엔 묵직한 느낌이 전해져 온다.
일상에서는 인식조차 못했던
한 줌 산소의 가치가 절실해진다.
베이스캠프 뒤쪽으로는
해발 6993m의 마차푸차레가 우뚝 솟아있다.
마차푸차레는
아직까지도 인간의 발걸음을 허락하지 않은
신의 영역이다.
1957년 영국 등반대가 정상 50m 앞까지 갔으나
갑작스런 기상악화로 인해서
정상을 밟아보지는 못했다.
그 후로도 마차푸차레를 오르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그 때마다 눈사태나 악천후로 인해서
아직까지 그 누구도 정상을 밟아본 적이 없다.
이에 네팔 정부는
국민들이 신성시 여기는
마차푸차레 등반을 금지시켰고,
아직까지도 마차푸차레는
등반허가가 나지 않는다.
저 멀리 안나푸르나가 보이기 시작한다.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구간은
지금까지 걸었던 구간에 비해서는
완만해서 무리가 없다.
하지만 고도가 4000m에 가까와짐에 따라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고,
한여름에도 곳곳이 눈으로 뒤덮혀 있어
길이 상당히 미끄럽다.
눈을 들어보면 안나푸르나가 보이고,
뒤를 돌아보면
마차푸차레가 시야를 가득 채운다.
뒤를 따라 올라오고 있는 트레커들이
개미만하게 보인다.
그 뒤로는 MBC라 불리는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가
성냥갑처럼 놓여있다.
현지인 포터들은 짐을 잔뜩 짊어지고도
빠른 속도로 앞질러 간다.
먼 하늘로 시선을 옮기면 안나푸르나가...
뒤를 돌아보면 마차푸차레가...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사방이 온통 설산들의 향연이다.
몇 걸음 걷다 뒤를 돌아보기를 반복한다.
고생길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저만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드디어 4130m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올라선다.
아무리 돌아봐도 천지간 보이는 것이라고는
장엄하고 황홀한 설산들 뿐이다.
저 많은 봉우리들 중 하나만이라도
우리나라에 있었더라면 좋으련만...ㅠ.ㅠ
모든게 빠르게만 돌아가는 초고속의 시대 속에서
두 발로 묵묵히 걸어온 길.
바쁘게만 살아오느라 돌아보지 못했던
나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다.
고된 일을 이겨낸 뒤에 얻는 기쁨은
배가 되 듯이,
여행이라고 다를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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