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의 종점에는
7~8000m가 넘는 히말라야의 고봉들을 배경으로
해발 4130m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가
자리하고 있다.
이 곳 베이스캠프는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종점인 동시에
정상 정복의 시작점.
하지만 일반인이 오를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이 너머로는 장비를 갖춘
전문 산악인만이 오를 수 있다.
웅장한 산세와 빼어난 자연경관으로 인해
전 세계 트레커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안나푸르나.
해발 8091m로서
세계에서 10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또 안나푸르나는 8000m 이상의 고봉들 중에서
인류가 최초로 오른 곳으로도 유명하다.
히말라야의 거센 바람들만이 가득한 곳에서
롱다가 깃발처럼 펄럭이며
트레커들을 맞는다.
한편에는 안나푸르나에 잠든 영혼을 기리는
추모탑이 서 있다.
힘없이 앉아 그 곁을 지키고 있는 개 한마리.
마치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모습에서
왠지 모를 슬픔과 애절함이 느껴진다.
얼마전 이 곳에서 실종된 박영석 대장과 대원들,
그리고 안나푸르나 품 속에 잠들어 있는
고인들을 추모하고 넋을 기리는 사진들과
태극기가 추모탑 앞을 채우고 있다.
신이 허락한 자만이 오를 수 있고,
살아 돌아올 수 있다는 안나푸르나.
'풍요의 여신'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과는 달리
많은 산악인들에게 고통과 쓰라린 좌절,
그리고 목숨을 앗아간 비운의 산이다.
아시아 최초이자 세계 8번째로
히말라야 14좌 등정에 성공한 엄홍길 대장조차도
1999년 정상에 오르기까지
다섯 번의 도전 중
네 번의 좌절을 맛보게 했던 곳이다.
산소가 부족한 이 척박한 땅에서도
들꽃들이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준다.
오직 두 발에 의지해
뚜벅뚜벅 걸어 올라 왔던 길.
이제는 정상에 앉아 그 길을 내려다 보며
성취감을 만끽해 본다.
베이스캠프(ABC)에는
레스토랑을 갖춘 4개의 롯지가 있다.
전망이 가장 좋아보이는 곳으로 들어가
점심을 먹는다.
식당 내부에는 이 곳을 다녀간
트레커들이 남긴 흔적들로 가득하다.
한글도 곳곳에서 눈에 들어온다.
이제부터는 하산이다.
더 없이 아름다운 절경을 뒤로 하고 내려갈려니
아쉬움에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ABC에서 하룻밤쯤 묵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일정도 여유가 없거니와
잘못하다간 고산병으로
밤새도록 고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하산을 서두른다.
오후가 되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봉우리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구름을 불러들인다.
마치 구름이 산 같고 산이 구름 같다.
구름 속에 마차푸차레가 신기루처럼 우뚝 서 있다.
이 높은 곳까지도
건축자재를 등에 짊어지고 오른다.
빈 몸으로 오르기도 숨이 차오르는데...
순식간에 돌변하는
변화무쌍한 고산의 날씨.
거센 바람과 함께 몰려온 구름이
고봉들을 휘감기 시작한다.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모든 봉우리들이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급기야는 빗방울까지 떨어지기 시작한다.
자칫 길을 잃을 수도 있겠다 싶어
카메라는 가방 속에 집어 넣고
우비를 꺼내 뒤집어 쓰고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를 지나고
데우랄리에 가까와지니,
이 곳은 아직까지 길이 말라있다.
비구름이 아직 이 곳까지는 따라오질 못했나 보다.
위쪽에는 비가 제법 내린 모양이다.
계곡물에 박력이 넘처 보인다.
이윽고 어젯밤 묵었던
데우랄리에 도착해서 여장을 푼다.
다음날인 트레킹 6일째는
데우랄리에서 촘롱까지 가는 일정.
오를때는 이틀이 걸렸지만,
하산에는 하루면 충분하다.
이 구간은 오를때와 동일한 경로로 하산하기에
카메라에게는 하룻동안의 짧은 휴식을 준다.
트레킹 7일째날.
아침 일찍 잠을 떨치고 나와
떠오르는 태양을 기다린다.
바로 4일 전 같은 위치에서 봤던 봉우리들인데,
오를때 보던 느낌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인간이 다가설 수 없는
신의 땅이라는 마차푸차레.
물고기 꼬리 모양의 정상이
오늘따라 더욱 날카롭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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