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가 그렇듯...
산행도 여행도 늘 계획대로만
흘러 가는 건 아니다.
하지만,
때론 예기치 못한 의외의 돌발변수가
자유여행의 묘미가 될 수 있고
추억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도 있다.
설악대종주를 염두에 두고
설악산 서북 주능선길에 들어섰지만...
단풍철 밀려든 산행인파로 인한 시간지체와
궂은 날씨로 인해
공룡능선을 포기하고...
27km의 서북능선 종주로 만족해야만 했던
아쉬운 산행이 되었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대진행 버스를 타고
남교리에서 하차한다.
다리를 건너
12선녀탕쉼터 뒷편으로 들어가서
남교리 탐방지원센터를 통과한다.
야간산행금지라는 표지판이 서 있지만
문은 활짝 열려있다.
오직 헤드랜턴 불빛 하나에 의지해
땅만 보고 걷기를 2시간째...
남교리 탐방지원센터로부터
5km 지점을 통과한다.
내 자신과의 싸움이고
고독과의 싸움이다.
낮 산행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나무에 매달린 야광막대와 현위치 표지판이
헤드랜턴 불빛에 반사되어
저 멀리까지도 길잡이 역활을 해준다.
저들이 없었더라면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이 많았을 듯.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 30분만에
해발 1210m의 대승령에 올라선다.
남교리로부터 8.6km를 걸었지만
여기까지는 그나마 평이한 길로 걷기 좋다.
하지만 길은 갈수록 험해지고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1408봉 정상이다.
누군가 아랫쪽에 큰감투봉이라고
수기로 적어 두었다.
이곳에서부터 귀때기청봉을 넘어
거의 한계령 삼거리 직전까지는
돌 무더기만 쌓여있는 너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마의구간이다.
귀때기청봉에 오르는 서북 주능선 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험한 너덜 바위길로
악명이 높은 곳이다.
설악산국립공원에서 제공하는
탐방안내도 상에도
귀때기청봉 전후 약 5km 구간은
검정색으로 '매우어려움'을 나타내고 있다.
게다가 거의 수직에 가까운 경사도의 계단길은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구간이다.
거의 네 발로 기다시피해서
설악산 서북 주능선의 맹주격인
귀때기청봉에 올라선다.
그 순간,
매서운 새벽 바람이 몸둥아리를 후려갈긴다.
배낭에서 외투를 꺼내 입고
온 몸을 꼭꼭 감싼다.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매서운 바람이 불어서
귀때기청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고
대청봉과 중청봉, 소청봉 삼형제에게
자신이 더 높다고 으시대다가
귀싸대기를 맞고 떨어져 나가서
귀때기청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재미있는 설화도 있다.
가파른 오르막과 거친 바윗길이
숨 돌릴 틈을 주지않고 계속된다.
설악의 위용을 온 몸으로 느끼며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길이다.
숨이 턱에 걸릴 정도로 힘겹고
몸은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되어간다.
겹겹이 포개진 수많은 능선들 위로
여명이 밝아온다.
희뿌연 안개속에서 날렵한 능선과
뾰족한 암봉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입이 떡 벌어지는 절경이다.
오늘은 가야 할 길이 멀어
마음이 바쁘기만 한데...ㅠ.ㅠ
단풍철이라 그런가?
한계령 삼거리에서 귀때기청봉으로 향하는
산행객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귀때기청봉을 지나면서부터는
새벽에 한계령 휴게소를 통해 올라오는
단체 산행객들에게
비좁은 산길을 곳곳에서 비켜주느라
시간은 자꾸만 지체된다.
날이 밝으니
바위 너덜길이 그 정체를 드러낸다.
널브러져 있는 바위들 사이에
군데군데 꽂혀 있는 하얀 폴대를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내딛는다.
등산 스틱은 오히려 방해만 되니
거두어 넣고 네 발로 기다시피 전진한다.
자칫 돌틈에 발이라도 빠지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내 종주산행길 중에서
설악대종주가 왜 가장 힘들고
난이도 높은 코스로 꼽히는지 알 만하다.
길도 험하지만
체력이 이미 많이 소진된 탓에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
발 딛는 곳곳마다 온통 바위 투성이고
오르내림도 공룡능선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험난하기만 하다.
허벅지와 종아리는
제발 쉬어 가자며 아우성이고
발바닥은 열불나서 못 걷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하지만 서북 주능선 위에 올라서면
용의 이빨 모양의 용아장성과
공룡의 등뼈 모양을 닮은 공룡능선 등
설악의 위용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가을 옷으로 갈아 입은 설악은
그야말로 한 폭의 수채화다.
예상보다 지체된 시간에
한계령 삼거리에 올라선다.
훌륭한 조망처답게 많은 산객들이 모여
설악의 웅장한 산세를 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악어 이빨처럼 날카로운 암봉들과
굽이굽이 옅게 깔린 운해,
그리고 알록달록 물든 나뭇잎...
모든 것들이 합작으로 만들어 낸
자연의 예술품이다.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한데...ㅠ.ㅠ
암봉들과 어우러진 오색단풍이
발길을 붙잡아 시간은 자꾸만 지체된다.
잠 한숨 자지않고
밤새도록 산을 오르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이제 10월 둘째주인데도
이 곳은 지대가 높아서 그런지
오색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단풍숲이
절경이다.
비록 안개와 구름으로 인해
흐릿한 풍광이지만
역시 명불허전 설악이다.
드디어 대청봉을 배경으로 서 있는
중청대피소에 닿는다.
단풍철인데다
중청대피소가 11월부터 공사로 인해
잠정휴업에 들어가는 관계로
마지막 추억을 남기려는 산객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늦은 아침겸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국공 직원이 메가폰을 들고 나와서
오후에 강수확률 70%로 비 예보가 있으니
오늘은 무리한 산행보다는
안전하게 하산하는데 방점을 두라며
하산을 독려한다.
일단 대청봉에 올라 생각해 보기로 하고
서둘러 대청봉에 오른다.
대청봉에 올라서자,
주변이 순간적으로 구름에 휩싸였다
벗겨지기를 반복한다.
바람도 점점 거세지며
때론 빗방울까지 떨어진다.
그래~
국공이 맞는 말이다.
공룡능선이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닌데...
지금 공룡능선에 들어선다 해도
도중에 어두워질테니...
굳이 비 속에서 야간산행까지 감행하면서
설악대종주를 무리하게 완주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안전산행이 우선이고
즐기는 산행이 되어야 하거늘...
오늘은 공룡능선을 패스해서
설악대종주 대신 서북능선 종주에
만족하기로 마음을 정리한다.
이제는 시간과 마음에 여유가 생겨
대청봉에 머물며
주변 풍광을 눈과 카메라에 담는다.
아예 대청봉 한켠에 자리를 잡고 앉아
풍경 감상 삼매경에 빠진다.
동해에서 밀려온 구름이
설악을 점령했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 사이 사이에 드러난
바위 봉우리들의 기묘한 풍경에
지루할 틈이 없다.
대청봉 주변은 지대가 높아서
마치 오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형형색색의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빠른 하산을 위해
오색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울긋불긋 화려하게 물든 단풍이 발목을 잡아
자연스럽게 휴식을 취한다.
커다란 바위 위에서
소나무들이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바위 위에 아슬아슬하게 뿌리를 내린
소나무의 대단한 생명력에
놀라움을 뛰어넘어 경외감마저 든다.
이렇게해서 남설악탐방지원센터에서
설악산 서북능선 종주를 마무리한다.
무엇보다도 길고 험난하기만 했던
27km의 설악산 서북능선 종주를
아무 탈 없이 안전하게 마무리한데 대해
큰 의미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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