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기나긴 우기 동안 겨울잠에 취해서 종적을 감췄던 빅토리아의 하늘이
오늘은 우중충한 잿빛 구름을 활짝 걷어 제치고,
수줍은 새색시마냥 새하얀 솜털같은 구름들 사이로 푸른 속살을 살포시 드러낸다.
하늘 가득히 쏟아져 내리는 금빛 찬란한 햇살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다시금 질주의 본능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겨우내 자전거 안장위에 켜켜이 쌓여 있던 먼지를 툴툴 털어내고나서는
가방 하나만 둘러멘체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선다.
오늘은 집을 출발해서(지도에서 D부분)
바닷가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시닉 머린 드라이브(Scenic Marine Drive)'를 따라
빅토리아를 한바퀴 도는 것으로 코스를 잡았다.
구글에서 체크해보니 42km가 나온다.
하지만 40km 정도면 몸풀기 라이딩으로서는 적당하리라는 나의 판단은 경기도 오산이었다.
해안선을 따라 반복되는 업힐과 다운힐, 그리고 마운트 더글라스를 한바퀴 도는 동안 계속해서 이어지는 업힐은
오랜만의 라이딩이라고 잔뜩 들떠서 출발했던 마음을 싸늘하게 식히고야 만다.
출발하기전 먼저 속도계를 '0'으로 세팅하고 안장위에 올라 앉아 페달을 밟아 본다.
거의 1년만의 장거리 라이딩이다.
역시나 출발부터가 순탄치 않다.
오랜만에 밟는 페달은 마치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마냥 왠지 모르게 어색하기만 하다.
게다가 옷속을 파고드는 매서운 바닷바람은 자전거 라이딩을 위해서는 아직 너무 이르다고 꾸짖기라도 하는 듯 하다.
▲ 거센 파도에 떠밀려 온 통나무들이 마치 조각품처럼 진열되어 해안가 자갈밭을 뒤덮고 있다.
▲ 깔끔하게 잘 정돈된 한적한 주택가를 지난다.
거리에는 인적조차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적막감이 감돈다.
▲ 해안가 군데군데에는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전망대가 마련되어져 있다.
새하얀 만년설로 뒤덮힌 미국 워싱턴주의 높은 산봉우리들과
미국과 캐나다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후안 데 푸카만의 눈부신 절경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 내리는 땀방울을 식혀주기에 충분하다.
▲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빅토리아 해안가의 아름다운 주택들
▲ 해안가 곳곳에는 해변으로의 접근이 용이하도록 통로를 마련해 두었다.
▲ 해안가에 자리잡은 빅토리아 골프클럽
아마도 골프장이 생긴 후에 그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도로가 생긴 듯하다.
골프장이 도로에 의해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 해안가를 따라 전망이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벤치들이 마련되어져 있다.
▲ 오크베이 마리나(Oak Bay Marina)
정박중인 수많은 요트들이 멋진 그림을 만들어 낸다.
해안가에서 유유히 수영을 즐기고 있는 물새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평화스러워 보인다.
▲ 아름다운 해안가 절경으로 인해 가다 서기를 반복하다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라이딩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 바다 위에 떠 있는 요트들의 모습이 정말 한폭의 그림이다.
▲ 자전거는 길가 가로수에 기대어 세워둔 채,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해안가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평화로운 바다 전경에 흠뻑 빠져들어 본다.
▲ 그 어느 지역보다도 영국적인 색채가 강하다는 오크베이
이 곳은 캐나다에서도 고가의 저택들이 많기로 소문난 곳이다.
특히나 업랜드(Uplands)라는 지역은 부촌 중의 부촌이라고 한다.
지나면서 봐도 대문을 지나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만 본채를 만날 수 있는
고성 같은 대저택들이 종종 눈에 들어온다.
▲ 가벼운 산책을 즐기기에는 더 없이 좋을 듯한 윌로우스 비치(Willows Beach)
비록 길이도 짧고 정돈되지 않은 듯한 조그마한 해변이지만,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어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기에는 안성맞춤일 듯하다.
▲ 이제 오크베이를 벗어나 사니치(Saanich)로 접어든다.
빅토리아 대학을 경계로 북쪽은 사니치, 남쪽은 오크베이로 나뉘어진다.
사니치에는 좋은 학교들이 많이 몰려 있어서
자녀 교육을 위해 유학생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좋은 주거지역이다.
▲ 이제는 해안가를 벗어나 숲속으로 접어든다.
다시 반복되는 업힐과 다운힐, 마치 체력 단련장에 와 있는 듯하다.
▲ 저 멀리 빅토리아의 전망대 역활을 하고 있는,
해발 213m의 마운트 더글라스(Mount Douglas)가 눈 안에 들어온다.
산인지 언덕인지...
아무튼 마운트 더글라스를 왼쪽에 끼고 한바퀴 돌아야만 한다.
▲ 숲속에 접어드니 한동안 오르막 길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울창한 나무들로 인해 숲속은 이미 어둑어둑하다.
옆으로 달리고 있는 자동차들은 전혀 속도를 줄일 생각없이 위협적으로 추월해 지나간다.
▲ 드디어 마운트 더글라스를 지나 오늘의 코스중 북쪽 끝지점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마운트 더글라스를 끼고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간다.
오르막 길이 있으면 내리막 길도 있는 법...
▲ 이제는 좀 여유를 가지고 마운트 더글라스를 바라보며 달리기 시작한다.
오른쪽으로는 농장들이 즐비하게 이어진다.
▲ 왼쪽으로는 마운트 더글라스 골프장이 펼쳐져 있다.
이미 해는 떨어지고 골프장엔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 드디어 만난 센테니얼 트레일(Centennial Trails)
트레일 코스에 접어들자, 마치 집에라도 온듯이 반가운 마음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제부터는 도로의 자동차를 신경쓰지 않고 달려도 된다.
더구나 이 트레일은 이미 여러번 달려봐서 내겐 상당히 익숙한 코스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처음 가는 길은 항상 긴장과 막연한 두려움이 앞서기 마련이다.
그래서 젊은 날 될수 있는 한 넓은 세상을 많이 접해 보고
다양한 체험을 쌓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 속도계를 보니 오늘 겨우 44.5km를 달렸을 뿐이다.
하지만 마치 100km 이상을 달린 것처럼 힘들고 지쳐있다.
물론 업힐이 많은 코스라서 그런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거의 1년만에 하는 장거리 라이딩이라서
적응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변명으로 스스로 위안을 삼아 본다.
▲ 세상에는 이미 어둠이 깔리고
집에 가는 도중에 만난 차이나타운에는 붉은 연등으로 화려하게 치장을 해 두어서
구정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실감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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