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을 걸어 본 사람은 안다.
모퉁이 마다 고독과 불안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 동안 발이 푹푹 빠지는 진흙길과
흙탕물 튀기는 물웅덩이를 건넜고,
마치 뭔가 튀어 나올 듯 한
어두운 숲 속도 지났으며,
가파른 자갈 언덕을 오르기도
벌써 몇 차례였다.
끝인가 보다 싶으면 다시 나타나고
이제야말로 정말 마지막이겠지 싶으면
또 다시 기다리고 있는 오르막과 험한 자갈길...
길이 어느 정도 험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런 고난도의 길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ㅠ.ㅠ
잠시 서서 망설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배낭을 멘다.
진정으로 땀을 흘린자에게만
그 만큼의 속내를 내어주는 자연이기에
그저 한 발 한 발 걷는 것 외에
달리 무슨 방법이 있으랴.
▲ 나뭇가지들 사이로
얼핏 얼핏 보이는 빙하들이 눈 길을 사로 잡는다.
알싸한 공기를 온 몸으로 느끼며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대자연 속을
두 발로 뚜벅 뚜벅 걷는 느낌을
어디에 비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 순간이 주는 매력 때문에
걷는 여행을 즐기는지도 모른다.
▲ 산행시 주변 풍경을 감상하려면
반드시 멈춰서서 구경해야 한다는
기본 수칙을 소홀히 했다가
하마터면 큰 일 날뻔 했다.
아름다운 풍경의 유혹에 빠져서
먼 산을 바라보며 걷다가
위쪽 사진 속의 불쑥 튀어 나온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서
그만 앞으로 꼬꾸라지고야 말았다.
순간 등에 메고 있던 배낭이 머리 뒤로 쏠리면서
그 무게 때문에 턱을 바위에 부딪쳤다.
피부가 벗겨져서 피가 좀 나기는 했지만
다행히 큰 부상이 아니었다.
그러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든다.
이 곳에서 무슨 사고라도 당한다면
주위에 도와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저 나무뿌리는 뒷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꼭 제거해 버리고 싶었지만
얼마나 단단한지 꼼짝도 하지 않는다.
▲ 차디찬 빙하 녹은 물에 빗물이 더해져
폭포처럼 굉음을 내며 세차게 쏟아져 내리는 계곡엔
가까이 접근하기 조차 겁이 난다.
▲ 계곡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치 두 계절이 공존하는 듯하다.
계곡 너머 저편은
세상의 종말이라도 몰고 올 듯이
어둡고 흐린 하늘 아래,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무채색의 세상이다.
반면에 이 쪽은 짙은 숲 향기와 노란 단풍이
완연한 가을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 길을 걷는 내내
우뢰와 같은 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처음엔 큰 비를 몰고오는 천둥소리인 줄 알고
길을 되돌아 내려가야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몰려 오기도 했다.
하지만 구름이 잠시 벗겨진 틈에 보니
산 위에 쌓여 있던 빙하가 쏟아져 내릴 때마다
천지를 뒤흔드는 듯한 소리를 만들어 낸다.
▲ 빗줄기는 약해졌지만
날씨는 여전히 나쁘다.
파란 하늘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비라도 좀 그쳐주면 좋으련만...
삶이 그렇 듯,
여행도 늘 뜻대로 풀리는 것만은 아니다.
▲ 그래도 명색이 국립공원인데
길 위에 어쩌면 이리도 사람이 없을까?
이제는 젖은 흙 위에 움푹 파인
사람의 발자국만 발견해도 반갑게 느껴진다.
나보다 앞서 이 길을 걸어 간 누군가의 존재.
지금 내가 최소한
세상의 벼랑 끝을 향해 걷고 있지는 않은가 보다ㅎ
▲ 길고도 험난했던 길의 정상에 올라서니
눈 앞에 거대한 장벽처럼
우뚝 솟은 설산이 다가온다.
▲ 순간적으로 먹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을 드러내 보인다.
하지만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잠시 뿐...
세상은 곧 다시
뿌연 안개 속에 숨어 버리고야 만다.
▲ 아쉬움을 안고 내려 오는 길.
이내 곧 빗줄기가 다시 흩뿌리기 시작한다.
▲ 우와~~
사람들이다ㅋㅋ
얼마 만에 만나는 사람들인가?
호숫가에 내려오니
서양인 트레커 서너명이 가던 길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하루종일 산 속을 혼자 걷다보니
이제는 사람의 모습만 봐도 반갑다.
역시나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나보다ㅎ
▲ 저 멀리 거대한 암봉 위에서
가늘고 기다란 폭포가 떨어져 내린다.
마치 연체동물처럼
흐느적 거리는 다리를 끌고 산장에 들어선다.
예약도 안하고 무작정 들어 갔지만,
다행히 침대는 여유가 있는 상태다.
하룻밤에 37불.
이 곳 국립공원 내의 산장들 중에서
가장 저렴한 곳이다.
대개는 하룻밤에 45에서 60불 정도...
대신 이 곳은
최소한의 시설만 갖추고 있는 듯하다.
건물 내에 전기 콘센트 조차 없다.
카메라를 충전하기 위해
부엌에 있는 콘센트 좀 사용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단호하게 'No' 라는 대답만 돌아온다.
하지만 비를 맞으면서
야영을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
또레스 델 파이네에서의 둘째날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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