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다의 도심 한복판에 있는 대광장에 밤새도록 움막을 짓고
가축들까지 끌고 온 이유가 무엇일까?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움막 안을 기웃거려 본다.
그러고 보면 중남미 여행하면서 나도 상당히 뻔뻔해진 듯하다.
빽빽하게 늘어선 현지인들 틈을 이방인이 당당하게 뚫고 들어가는 걸 보면...
하기사, 이곳의 뜨거운 태양에 내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서 현지인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다.
내부를 들여다 보는 순간 내 시야를 가득 채운 건 내게도 그다지 낯설지 않은 장면들이다.
움막 안에 죽은 영혼을 위한 재단을 마련해 두고
음식과 꽃으로 주변을 화려하게 장식해 두었다.
영락없이 우리의 제사상이나 차례상을 보는 듯하다.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죽은 자들의 날(Day of the deads)'을 맞이하여
세상을 떠난 조상이나 친구들에게 음식을 올리기 위한 제단이다.
'죽은 자들의 날'은 11월 1~2일에 열리는 멕시코의 전통 축제이지만
이때가 10월 마지막 주말이라 주말을 이용해서 미리 제단을 마련한 듯하다.
제단 위에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과 망자의 사진을 올리고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우며 온 가족이 모여 제단을 지키는 건 우리의 제사상과 다를바 없다.
하지만 우리의 제사와는 달리,
대낮에, 그것도 도시 한복판에 제단을 마련한 것이 흥미롭다.
그리고 망자가 세상을 떠난 날이 아니라,
1년에 한번 단체로 모여서 제사상을 차리는 것도 특이하다.
멕시코인들은 세상을 떠난 조상들이 이승의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기 위해
1년에 한번 이날을 통해 찾아 온다고 믿는다.
우리의 제사상처럼 홍동백서, 어동육서 같은 상차림에 대한 어떤 격식이 있는지,
어떤 음식은 올리고 어떤 음식은 올리면 안된다는 제한도 있는지,
이방인으로서 깊이 있는 내용까지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추측컨대 망자가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을 많이 올리는 듯하다.
때문에 어떤 집의 제단 위에는 콜라병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는가 하면,
또 어린 영혼들을 위해서는 장난감이 올라와 있기도 하다.
우리는 제사상이나 묘지 앞에 서면 엄숙해지고 슬퍼지지만,
멕시코인들은 '죽은 자들의 날'을 유쾌하고 즐거운 축제로 승화시켰다.
워낙에 노는 것을 좋아하고 낙천적인 국민성 때문인지
제사의식마저도 하나의 축제로서 온국민이 떠들썩하게 지낸다.
▲ 집밖의 대문 앞이나 담벼락 밑에 제사 음식을 따로 담아 내놓는 것도 우리와 비슷하다.
우리도 제사의 풍습이 집안마다 다르고 지방마다 다르듯이,
이들이 제사를 지내는 방식도 집집마다 개성이 넘치고 흥미롭다.
▲ 어떤 집은 모든 가족이 움막 앞에 늘어서서 성경을 읽고 찬송가를 부르는가 하면...
▲ 또 어떤 집은 마치 우리의 굿판을 보는 것처럼
신들린 듯한 몸짓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의식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들의 이런 행위가 그리 낯설지는 않다.
▲ 이렇게 제단 앞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곳도 있다.
아마도 망자가 생전에 음악을 무척 좋아했거나 음악 관련 일을 했던 모양이다.
▲ 마치 죽은 영혼이 돌아 온듯이 망자의 역활을 맡아 연기를 펼치기도 한다.
▲ 제사를 마치고 제사음식을 이웃과 나눠 먹는 풍습도 우리와 같다.
음식을 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민들의 모습이 흥미롭다.
인간에게 산다는 것, 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고대 멕시코인들은 삶과 죽음이 곧 하나라고 믿었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더 좋은 세상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관문으로 여겼다.
때문에 그들에게 죽음은 슬프거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멕시코인들은 제사가 끝난 후에도 묘지를 찾아 묘지 뒤에서 떠들썩하게 밤을 보낸다고 한다.
일년간 집과 고향을 떠나 있던 고인이 명절을 맞이해서 다시 가족들을 만나
몇일 같이 보내는 것 정도로 죽음을 받아 들이는 모양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인을 기리는 방법이 다를 뿐,
그 마음이야 모두 다 같지 않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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