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
일찌감치 체크아웃을 하고 숙소를 나선다.
먼저 아르마스 광장 옆에 있는
투어리스트 센터에 들러서
꼴까 가는 버스 시간표와
숙소에 관한 정보를 좀 달라고 했더니
근무하는 아가씨가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일반적으로 오전 11시 30분경에
아레끼빠에서 꼴까 가는 버스가 있는데,
오늘은 파업이 예정되어 있어서
버스가 운행을 안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고는 전화를 한,두군데 해보더니
비록 오늘 파업이 있어도
다행히 버스는 정상적으로 운행된다고 한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려는데
아가씨가 한국어와 일본어가 같냐고 묻는다.
전혀 다르다고 하자,
이번에는 그럼 한국어와 중국어가 같냐고 다시 묻는다.
역시나 다르다고 대답했더니
이 아가씨가 하는 말이
자기네들이 일본어와 중국어로 된
팜플렛은 가지고 있는데
한국어로 된 팜플렛은
가지고 있지 않다며 미안하다고 한다.
참으로 친절하고 고마운 아가씨다.
투어리스트 센터에서 나온 다음,
근처에 있는 수퍼마켓에 들러서
점심에 버스 안에서 먹을 음식을 사가지고
택시를 잡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뭔가 주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거리를 달리던 수 많은 택시들이
어디론가 모두 사라지고 거리가 갑자기 한산해졌다.
왠지 모르게 긴장감이 느껴진다.
시간이 좀 흐르자,
거리를 행진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파업 노동자들의 행렬이었다.
거리를 행진하는 파업 노동자들의 손엔
뭉둥이가 하나씩 들러져 있고,
그 주변을 무장한 경찰이 따라 붙고 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건
음료수나 아이스크림을 파는 행상인들이
그 행렬을 뒤따르고 있다.
도로 주변에서는 여행자들이
노동자들의 행렬을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하다.
이 때문에 나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몇 블럭을 걸어서야 겨우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힘들게 겨우 겨우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서
버스에 올라탄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깊다는
꼴까 캐니언을 가기 위해서다.
이윽고 버스가 꼴까 캐니언에서 가까운
카바나콘데(Cabanaconde)를 향해 출발한다.
아레끼빠에서 카바나콘데까지는 5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제는 5시간 동안 긴장을 풀고
차창 밖 풍경을 만끽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또 다시 뭔가 심상치 않다.
버스가 산 길을 굽이굽이 돌아 오르고 또 올라간다.
끝도 없이 펼쳐진 오르막 길이다.
달리는 차 안에서 어딘가에 손을 잡지 않으면
바로 몸이 내동뎅이 쳐질 정도다.
버스는 꼬불꼬불한 산 길을 돌고돌아
끝도 없이 올라간다.
아레끼빠만 해도 해발 2300m라는
상당히 높은 곳에 위치한 도시인데,
이렇게 계속 오르기만 하면
도대체 얼마나 높이 올라간단 말인가?
순간, 뭔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바로 고산병에 대한 걱정이다.
주위에 있던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이 버스가 해발 4900m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볼리비아에서 우유니 사막투어를 할 때
해발 4800m까지 올라가 보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괜찮겠지 하면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버스가 지나는 길 옆으로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는
하얀 설산이 눈에 들어온다.
해발 5825m의 미스티(Misti) 화산이다.
아레끼빠 위쪽에 자리한 이 화산은
1600년 지진 때 마지막으로 폭발했으며
지금은 휴화산이다.
한 참을 달리던 버스가
이제는 비포장길로 접어든다.
달리는 동안,
버스 안으로 흙먼지가 얼마나 많이 들어오는지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어느 순간부터 목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달리는 길 옆쪽으로 수 많은 비꾸냐 무리가
풀을 뜯고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버스가 너무나 흔들리고
흙 먼지가 많이 들어와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투어버스라면
잠시 멈춰서서 사진 찍을 기회를 주겠지만,
현지 로컬 버스를 타고 가다보니
옆에 아무리 좋은 경관이 나타나도
그냥 달리기만 할 뿐이다.
하기사, 현지인들은 매일 보는 풍경일텐데...
얼마나 달렸을까?
산을 넘어 이제부터는 내리막 길이 이어진다.
옆으로 창 밖을 내다보니
눈 앞이 아찔할 정도로 가파른 내리막 길이다.
도로가 마치 엿가락처럼 꾸불꾸불 산을 돌아서
아래로 이어져 있다.
버스가 달리는 도로 옆으로는
천길 낭떠러지 같은 절벽이 이어진다.
감히 창 밖을 내다보기 조차 힘들 정도다.
산 중턱을 내려오니
저 멀리 꼴까 캐년(Canon del Colca)이 시작되는 지점인
치바이(Chivay)라는 조그마한 도시가 눈에 들어온다.
여행사를 통해 1박2일 투어를 하면
치바이에서 1박을 하게 된다.
사실 나도 카바나콘데(Cabanaconde)까지 갈 필요 없이
여기서 숙박을 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꼴까캐년으로 갔어야 했는데...
충분한 정보가 없다 보니
첫 날 카바나콘데까지 들어갔다가
다음날 아침 다시 같은 길을 되돌아 나와야 했다.
왜냐하면 꼴까캐년이 치바이에서
카바나콘데로 가는 도중에 있기 때문이다.
버스가 아레끼빠를 출발한지
3시간 만에 치바이에 도착한다.
버스 정류장에 정차해 있는 동안
꼴까캐년 입장료를 받는 사람이 버스에 올라탄다.
입장료가 35솔...
한국 돈으로 14000원 정도다.
이 나라 물가를 고려하면 상당히 비싼 편이다.
버스가 카바나콘데를 향해서 다시 출발한다.
여기서부터는 그야말로 산골 오지를 가는 듯 한
자갈 투성이의 길을 달려간다.
버스가 얼마나 덜커덩거리는지
가만히 앉아 있기 조차 힘들다.
그야말로 산골 오지 중의 오지다.
저 멀리 들판에는
안데스 산맥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계단식 농경지가 그림 처럼 펼쳐져 있고,
길 양 옆으로는 각가지 이름 모를 풀들과
선인장들이 즐비하다.
꼴까캐년이 시작되는 지점을 흐르는
꼴까강의 상류이다.
꼴까강 상류는
해발 약3800m의 고지대에 펼쳐져 있고,
협곡 아래로 450km를 굽이굽이 흐르는 물줄기가
아마존 강을 거쳐 태평양으로 흘러 들어간다.
버스 위에서 내려다보는 꼴까강은
바라만봐도 눈 앞이 아찔할 정도의
천길 낭떠러지이다.
우리가 지나 온 길이
마치 엿가락처럼 구불구불 돌아서
하얀 선으로 이어져 있다.
저 강 옆에서 지그재그로 돌고 돌아서
이 곳 산 중턱까지 올라온 것이다.
드디어 버스가 콘돌 전망대라고 할 수 있는
Cruz del Condor 지점을 지나친다.
강의 양쪽 옆으로는 깊이가 1200m나 되는
깍아지른 듯 한 절벽이 펼쳐진다.
협곡이 넓지는 않지만,
가장 깊은 곳이 약 3400m로서 세계에서 가장 깊어서
미국의 그랜드캐년 보다도 2배나 깊다고 한다.
드디어 아레키파를 출발한지 5시간 만에
카바나콘데에 도착한다.
역시나 이 마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콘돌이 마을 중앙광장을 지키고 있다.
중앙광장 주위에만
몇 군데의 상점과 숙소가 모여 있을 뿐,
광장을 조금만 벗어나면
전형적인 산골 오지마을이다.
오늘 밤은 여기서 숙박을 하고
내일 아침 일찍 꼴까캐년으로 향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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