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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South America)/2010 페루

잉카의 눈물, 리마(Lima)의 센트로 지역

by 호야(Ho) 2010. 9. 13.

          

            

사막지대에 건설된 페루의 수도, 리마(Lima)는

1년내내 거의 비가 오지 않는다.

단지 태평양을 접하고 있어서 자욱한 안개가 메마른 대지를 적셔 주는데

이 곳 사람들은 이를 '잉카의 눈물'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잉카의 눈물'이란 표현이 이런 기후 현상만을 염두에 두고 붙여진 건 아닐 듯...

           

한때는 고도의 문명을 자랑했던 옛 잉카제국의 수도, 꾸스꼬(Cusco)가

불과 몇 안 되는 잔인무도한 스페인 군대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황제마저 처형당하자

조상 대대로 살아 온 삶의 터전을 버리고 안데스 산맥 깊숙히 숨어 들어 가야만 했던

잉카족의 나라 잃은 슬픔과 한을 빗대어 표현한 말이 아닐련지...

          

더구나 지금의 수도, 리마(Lima)는

스페인 정복자 피사로가 약탈한 황금과 보물을 자신의 나라로 실어 나르기 위해

태평양 연안에 건설한 후 수도로 정한 곳이기에

잉카족의 후예인 페루인들의 애통함과 슬픔은 더욱 컷으리라...

         

▲  리마 센트로의 중심, 아르마스 광장

          

여느 스페인의 식민도시와 마찬가지로 리마의 중심에도 역시나 아르마스 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1535년 잉카제국의 수도, 꾸스꼬에서 리마로 수도를 옮긴 스페인 정복자 피사로는

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리마의 시가지를 바둑판처럼 격자형으로 건설해 나갔다.

            

▲  아르마스 광장에 서 있는 분수대

            

이 자리에는 원래 피사로의 동상이 우뚝 서 있던 자리였으나

2001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원주민 출신 똘레도가 침략자의 동상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대신 분수대를 세웠다.

그리고 이름도 아르마스 광장에서 시청광장으로 바꾸었으나

아직까지는 같이 사용되고 있는 편이다.

           

            

이 때가 월드컵 기간이라서 아르마스 광장 한편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월드컵 경기의 생생한 장면을 시민들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  아르마스 광장 한편에 자리한 대성당

           

페루에서 가장 오래된 대성당으로 침략자 피사로가 직접 초석을 놓았다고 한다.

1746년 대지진으로 크게 파괴되었으나

1755년 원형대로 복구했다고 한다.

성당 내부에는 피사로의 유체로 알려진 미이라가 유리상자에 안치되어 있다.

            

            

            

          

▲   페루의 대통령 궁

           

아르마스 광장의 또 다른 한면을 차지하고 있는 대통령 궁은

1541년 피사로가 암살되기 전까지 마지막 몇년을 살았던 곳이다.

1938년 개축에 의해 지금의 현대적인 건물로 다시 태어났다.

             

                

평일 낮 정오쯤에는 대통령궁 앞 광장에서 경비원들의 교대식이 벌어진다.

군악대의 연주에 맞춰 절도있게 걸어가는 경비원들의 행진이 볼만하다고 한다.

              

            

           

          

▲  페루의 국회 의사당

              

                        

            

           

           

            

          

           

            

            

             

▲  산 프란시스코 교회

            

바로크 양식과 안달루시아 양식으로 1567년부터 7년동안의 공사를 거쳐 완공되었다.

교회 앞 광장을 점령한 수 많은 비들기떼가 인상적이고

내부는 종교적인 초상화와 벽화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 곳은 지하에 있는 약 7만명의 뼈를 담은 지하무덤인 까따꼼으로 유명하다.

서늘한 기운이 스며나오는 미로 같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사람의 해골과 뼈로 가득 담긴 상자가 벽을 따라 늘어 서 있다.

              

            

             

           

               

            

            

            

            

            

▲  '리마의 명동'이라 할 수 있는 라 우니온 거리

           

아르마스 광장과 산 마르틴 광장을 잇는 크고 번화한 보행자 거리,

원래는 다양한 물건을 파는 노점상들로 가득했었고

현지인들조차도 무서워하는 소매치기의 소굴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치안과 질서유지를 목적으로 노점 행위가 금지되었다.

             

▲  산 마르틴 광장

            

오랜 세월동안 페루의 정치적 집회가 자주 열린 장소,

이를 진압하려는 경찰과 시위자들의 대치도 흔하게 벌어지는 장소이다.

            

             

광장 중앙에는 페루 독립운동에서 큰 업적을 남긴 산 마르틴 장군의 기마동상이 서 있다.

광장의 이름도 산 마르틴 장군의 이름을 따서 붙어졌다.

               

            

광장 주변에는 호텔과 여행사등 여행자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모여있고

주변도로는 차량들로 넘쳐나는 교통의 요지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도시가 그렇듯 여행자들이 모이는 곳에는

이를 노리는 사람들도 모여들어서 치안이 좋지 않은 편이다.

             

             

            

            

               

              

            

▲  왼쪽에 페루의 국기가 꽂혀 있는 건물이 종교 재판소 박물관

              

잉카제국을 정복한 스페인 침략자들은 자신들의 신앙만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고

이교도들을 잔혹하게 고문하고 살해했다.

박물관 내부에는 밀랍인형을 이용해서 당시의 고문 방식이나 재판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리마'라는 이름은 이 도시 주변을 흐르는 리마크(Rimac) 강에서 따온 것이다.

리마는 유럽의 식민 지배자들이 세운 남미 최초의 콜로니얼(Colonial) 도시였다.

콜로니얼 도시란 침략자들이 식민지에 자신들의 도시구조와 건축양식을 동원해서

식민지를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 건설한 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