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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산행/지리산

무모했던 무박당일 지리산 성중종주(성삼재~중산리)

by 호야(Ho) 2020. 10. 26.

지리산 종주!!

  

드디어 간다.

   

그 동안 몇번이나 계획했다 미루기를 반복했던가?

  

산불방지 기간의 입산금지가 풀리고 나니

이번엔 코로나로 인해 대피소가 폐쇄되더니

   

또 다시 장마철 집중호우로 입산통제,

그리고 코로나 재확산에 이어 태풍까지...

   

미루고 또 미루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엔 무박 당일종주를 감행하기에 이른다.

   

1박 2일 정도면 딱 좋을 듯한데

대피소가 폐쇄되었으니

딱히 방법이 없다.

   

새벽 4시부터 산을 오르기 시작해서

당일에 33.6km를 걸어야 하는 산행길이

살짝 부담스러운게 사실이다.

    

특히나...

   

산의 조망이나 경관을 즐길

마음의 여유도 없이

   

결국은 인내와 체력테스트가 되어 버릴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감행하는 건

나의 오기인지 객기인지...^^

   

  

성삼재에서 산을 오르기 시작한지 40분쯤 지나

노고단 고개를 통과한다.

    

천왕봉까지 25.5km가 남았다는 표지판이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ㅎ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헤드랜턴 불빛만 보고 걷기를 두 시간 가량...

    

그 사이 날이 밝아 오고...

    

임걸령 쉼터에서 잠시 머물며 재정비를 하고

다시 발길을 재촉한다.

    

     

역시 지리산이다.

이름 값을 하겠다는 건지

길이 만만치가 않다.

    

    

7시가 가까와질 무렵

삼도봉에 도착한다.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

3개의 도가 만나는 지점이다.

   

이 곳에서 탁 트인 조망을 감상하며

아침을 먹는다.

   

비록 식어빠진 김밥 한 줄이지만

지리산의 웅장한 풍광을 반찬 삼아 먹는 이 맛...

어디에 비할 쏘냐?

   

   

    

    

어휴~~

또 계단이다.

   

하지만 돌계단이나 너덜지대가 많아서 그런지

이제는 오히려 데크계단이 반갑게 느껴진다.

   

   

     

    

아직 9월말인데...

     

고도가 높아서 그렇겠지만

성질 급한 나무들은

벌써 가을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9시가 다 되어갈 무렵

연하천 대피소에 들어선다.

    

평소 같았으면

지난 밤 숙박했던 등산객들로 북적거렸을텐데...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적막감에 휩싸여 있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쪼그만 코로나가

세상 참 많이도 변화시켜 놓았다.

    

이 놈의 코로나가 하루빨리 사라져야

대피소에서 하룻밤 묵어 가면서

좀 여유있는 산행을 할텐데...

    

    

    여기는 사족보행...

즉 네 발로 기어 올라야 한다.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했다.

    

언젠가 공사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적 있는데

이제는 깔끔하게 새단장을 마치고

등산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문을 닫은 상태.

숙박은 할 수 없고

취사장과 매점만 개방된 상태다.

     

   

선비샘에 도착해서

시원한 냉수 한 모금 들이키고는

물통에 식수도 보충한다.

   

산 속에서 졸졸졸 흐르는

샘물을 받아 마시는 그 맛이란...

논해서 무엇하랴.

    

지리산은 물이 풍부해서

곳곳에서 식수를 보충할 수 있어

몇 리터씩 짊어지고 다녀야 하는 수고를 덜어준다.

     

     

   

     

오늘의 목적지 천왕봉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언제 저 곳까지 간단 말인가?ㅋㅋ

    

왼쪽에서 두번째 봉우리가 천왕봉...

첫번째 봉우리는 지리산의 2인자 중봉이다.

   

높이로만 따지자면 중봉은 1875m로서

한라산 백록담과 천왕봉에 이어

남한에서 세번째로 높은 봉우리지만

     

천왕봉의 명성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ㅋㅋ

   

   

 

9월 말인데다가 남쪽지방이라

단풍까지는 기대를 안했는데...

     

고지대라 그런지 벌써 곳곳에 단풍이 들어

오늘 눈호강 한번 제대로 한다.

    

   

     

   

드디어 나뭇가지들 사이로

세석 대피소의 모습이 보이고,

    

앞쪽으로는 그 유명한 세석평전이

고원지대에 드넓게 펼쳐져 있다.

    

철쭉이 피는 계절의 세석평전이

그야말로 최고의 장관이라지만,

     

이 시기의 세석평전의 모습도

아름답기는 마찬가지다.

    

      

      

       

세석 대피소에 도착했다.

     

이미 10시간 가까이 걸었기에

오늘밤은 여기서 묵고

     

나머지 일정은 내일 진행하면

더없이 좋으련만...

   

코로나, 이 나쁜 놈ㅋㅋ

     

       

몸은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어

한 두시간이라도 쉬어가면 좋으련만...

     

천왕봉에 오르기 위해서는

장터목 대피소를 4시 이전에 통과해야 하기에

    

물 한모금 마시고는

다시 배낭을 들쳐맨다.

     

      

4시 전에 장터목 대피소를 통과하기 위해

촛대봉은 자세히 둘러볼 겨를도 없이

겹눈질로 힐끔 한번 처다보고는 재빠르게 통과한다.

    

촛대봉에 대한 예의가 아닌 줄은 알지만

천왕봉에 오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ㅋㅋ

     

      

아직도 갈길은 먼데

몸은 이미 녹초가 되어간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몸이 힘들수록 머리는 오히려

더 편안해지고 맑아지는 느낌이다.

    

     

   

      

오호~ 통재라!!

    

엎친데 덮친격으로

등산스틱 하나가 고군분투 중 장렬히 전사했다.

    

한라산이며 설악산 등 산행때마다

나와 같이 동고동락하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는데...

    

이제부터는 하산시까지 스틱 하나로 버텨야 한다ㅎ

    

      

    

      

    

     

세석 대피소에서 연하봉에 이르는 능선길...

연하선경이다.

      

평소에도 워낙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단풍으로 화려하게 물든 모습은

그야말로 황홀경이다.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한 시간이 3시 20분경.

다행히도 통과 제한시간 이전에 도착했다.

    

매점에 들어가 물 한병 사서 마시고는

천왕봉을 향해 가파른 계단길을 오른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저 멀리 오늘의 목적지 천왕봉과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주변의 알록달록한 단풍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지만...

     

몸이 이미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된 탓에

가파른 오르막 길이 잔인하게만 보인다.

    

    

뿌리가 뽑혀 반쯤 누운 상태에서도

푸릇푸릇하게 끊질긴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을 지나...

    

    

대한 독립 만세~~!!!

ㅋㅋㅋ

    
드디어 천왕봉 정상에 올라섰다.

  

새벽 4시 성삼재에서 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13시간 만이다.

   

마침내 해냈다는 성취감에 뿌듯함과

대자연에 대한 경외감, 그리고

위대한 자연 앞에서 겸허심이 동시에 느껴진다.

  

   

정상에 앉아 한 두시간 정도 멍~ 때리며

가을이 물들어 가는 주변의 풍광에

흠뻑 취해 보고 싶지만,

    

해가 기울어 가면서

험한 하산길에 대한 걱정이 밀려온다.

    

     

방금전까지 정상에 같이 있던 산객들은

모두 하산길에 들었는지

주위에 아무도 없다.

   

배낭 위에 카메라를 얹어놓고

셀프 인증샷을 남기고는

나도 서둘러 하산을 시작한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직 헤드랜턴 불빛 하나에 의지해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 산을 내려온다.

   

밤 8시가 되어 중산리 탐방지원센터를 통과하며...

   

새벽 4시 성삼재로 시작해서

중산리로 하산하기까지

   

16시간 동안 33.6km를 걸었던

이번 지리산 성중종주를 무사히 마무리 한다.

   

33.6km...

평지라도 당일에 걷기 힘들었을 미친 거리ㅋㅋ

    

이번 종주를 통해 얻은 교훈(?)은...

   

지리산 무박 당일종주라는 것!!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