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종주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화대종주길에 오른다.
2020년 무박당일의 성중종주
(성삼재~중산리 33.4km),
2022년 1박2일간의 성대종주
(성삼재~대원사 42km)에 이어
이 번이 세번째 지리산 종주다.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경남 산청 대원사까지
약 47km를 1박2일 동안 걸어야 하는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이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구례행 버스를 탄다.
추석연휴라 고속도로가 막혀
밤 7시50분 출발예정이었던 버스는
8시 30분이 넘어서야 서울을 출발한다.
구례터미널에 도착해서
국밥이라도 한 그릇 먹고
산행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라
식사를 할만한 곳이 없다는 말에
택시를 타고 화엄사로 향한다.
화엄사에 도착해서 아쉬운대로
서울에서 싸온 김밥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새벽 1시 20분경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초반 연기암까지는 완만한 오르막으로
별 어려움없이 걸을만하다.
하지만 길은 갈수록 점점 가팔라지고
바위 너덜지대의 연속이다.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가팔라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코재...
코가 아니라
이마나 정수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급경사의 오르막이 이어진다.
아무리 오르막이라도
평지나 내리막이 번갈아 나오기 마련인데
이 구간은 초반부터 끝까지 줄곧 오르막의 연속이다.
초반부터 영혼까지 탈탈 털린채로
무넹기에 올라선다.
이번 화대종주길 중에서
초행길이면서 가장 큰 고비라는
화엄사~무넹기 구간을 넘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무넹기에서 노고단 대피소를 지나
노고단 고개까지는
편안한 임도길을 따라 걷는다.
노고단 대피소 공사 관계로
노고단 대피소에서 노고단 고개에 이르는
빠른 돌 계단길은 폐쇄되었다.
추석 하루 전이라
완전한 보름달은 아니지만,
노고단 고개에서 마주한 풍경은
그간의 노고를 잊게 하기에 충분하다.
헤드랜턴 불빛 하나에 의지해
칠흑 같은 어둠 속을 걷다가
잠시 뒤를 돌아본다.
이름모를 봉우리 능선 위로
보름달이 살포시 내려앉고 있다.
지리산 자락에서 가장 물 맛이 좋다는
임걸령 샘터.
시원한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배낭 안에 식수도 보충한다.
어느덧 태양이 떠올라
아침햇살이 수풀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
3개의 도가 만나는 삼도봉에 올라선다.
삼도봉에서 바라다 보는
지리산의 산그리메가 환상적이었는데...
오늘은 얕은 운무가 살포시 내려앉아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이 맛에 힘든 수고를 감내하면서도
산에 오르는게 아닐까 싶다.
삼도봉에서 550여개나 되는 데크계단을 따라
하염없이 내려가면 화개재에 닿는다.
마치 수직낙하하 듯,
무려 200여 미터를 내려간다.
하지만 내리막 뒤엔 오르막이 있는 법!!
또 다시 200여 미터를 올라야 하는
토끼봉이 눈 앞에 버티고 있다.
지리산에도 초록의 조릿대가 무성하다.
조릿대가 널리 퍼지면
다른 식물의 생장을 방해해서
식물의 다양성이 훼손된다는데...
제주도 한라산처럼
산 전체를 조릿대가 뒤덥지 않을까
우려가 되기도 한다.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며
토끼봉과 명선봉을 넘어
연하천 대피소에 들어선다.
오늘 이미 17km를 넘게 걸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연하천 대피소에서 아침을 먹는다.
한국인은 밥심이라는데...
뜨끈하고 매콤한 국물이 생각나서
신라면을 끓여 새벽에 먹다 남은 김밥과 함께
허기진 배를 채운다.
연하천 대피소를 떠나
벽소령 대피소로 향한다.
웅장하고 장쾌한
지리산의 매력을 만끽하는 길이다.
지리산은 이미 높은 고지대에서부터
울긋불긋하게 물들어 가고있다.
3.6km를 걸어
벽소령 대피소에 들어선다.
점심을 먹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벽소령~세석 대피소 구간이 6.3km로 제법 먼 거리다.
지난번 종주를 반면교사로 삼아
혹여라도 도중에 허기가 져서 지칠까봐
햇반을 하나 구입해서 물에 말아
억지로라도 든든하게 먹어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매함 보다는
한 발 앞서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제 오늘의 종착지 세석 대피소로 향한다.
추석연휴라 예약자가 많아 대기 타다가
어렵사리 예약에 성공한 세석 대피소다.
역시 선비샘에서 시원한 물 한 모금 들이키고
배낭안에 식수도 보충한다.
곳곳에서 식수를 보충할 수가 있어
많은 식수를 짊어지고 다닐 필요가 없다는 게
지리산 산행의 장점이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다.
알록달록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이
가을 단풍산행철을 알린다.
영신봉에 오르는 길...
신을 영접하러 가는 길이니
길이 호락호락할 리가 없다.
가파른 오르막의 돌 너덜길에다
끝없이 이어지는 지옥의 데크계단...
숨은 턱밑까지 차오르고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다.
거친 숨을 토해내며
힘겹게 능선 위에 올라서자,
겹겹이 포개진 산그리메가
마치 물결치 듯 일렁인다.
안개와 구름까지 합세해
비현실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한 동안 넋 놓고 바라본다.
저 멀리 천왕봉은 구름 속에 갇혀있고
그 아래쪽에 장터목 대피소가
하얀 점으로 보인다.
영신봉에 올라선다.
무속인이나 풍수지리가들이
영험한 기운이 있는 봉우리라 해서
기도처로 많이 찾는다고 한다.
이제 600m만 더 가면
오늘 숙박할 세석 대피소에 닿는다.
드디어 드넓은 세석평전이 눈앞에 펼쳐진다.
세석평전도 역시 알록달록한 가을 옷으로
갈아입고 있는 중이다.
오늘 하루 27km를 걷고
마치 연체동물이라도 된 양
두 다리를 흐느적거리며
세석대피소에 들어선다.
서울에서부터 짊어지고 왔던
오리고기 구이로 저녁을 먹고
일찌감치 잠을 청한다.
산행 지도상으로는 27km를 걸었는데
핸드폰 어플에는 37km가 찍혔다.
10km는 어디를 헤매고 다녔는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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