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주 1일차 (23.1km)
성삼재 -> 노고단 고개 -> 삼도봉 ->
연하천 대피소 -> 벽소령 대피소 -> 세석 대피소
딱 2년만이다.
지리산과의 만남이...
2년 전 추석 연휴 때
코로나로 인해 대피소가 폐쇄되면서
부득이하게 무박당일로 걸었던
성중종주 33.4km(성삼재~중산리).
왠지모를 아쉬움이
항상 마음 속 한켠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대피소가 개방되면서 다시 지리산으로 향한다.
애초 화대종주 47km(화엄사~대원사)를
마음 속에 두었지만,
추석 연휴 탓인지
구례로 가는 차표를 구하지 못해
부득이하게 성삼재로 들머리를 변경...
아무리 꿩 대신 닭이라지만
여전히 마음 속 한켠에 미련이 남는 건
단순히 기분 탓만은 아닐터...
지리야!
기다리거라.
언제라고 장담할순 없겠지만
또 보자꾸나.
추석 연휴 전날
동서울 터미널에서 심야버스를 타고
성삼재로 향한다.
꼬박 4시간을 넘게 달린 버스는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성삼재에 도착한다.
9월초인데도
성삼재의 새벽 공기는
손이 시러울 정도로 차갑다.
새벽 3시 40분
천왕봉까지 28.1km라는 이정표를
눈에 새기며
헤드랜턴 불빛 하나에 의지해
노고단 고개를 향해 전진한다.
도중에 만난 갈림길...
길이 묻는다.
편안한 길로 3.2km를 걸을래? 아니면
가파른 데크계단길로 1km를 오를래?
이건 뭐...
산신령이 나타나
이 금도끼가 네것이냐?
이 은도끼가 네것이냐?고
묻는 식이다ㅎ
초반부터 돌아갈 이유가 없다.
힘은 들겠지만 빠른 길로
레츠고~~
이윽고 노고단 고개에 올라선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종주길이다.
여기서 천왕봉까지는 25.5km...
돼지령을 지나
임걸령 샘터에서
시원한 물 한 모금 들이키고는
노루도 지쳐 쉬어간다는
노루목을 뒤로 하고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걷고 또 걷는다.
새벽 6시
이윽고 삼도봉에 도착한다.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
세 개의 도가 만나는 곳이다.
2년 전 이 곳에서 김밥으로
아침을 먹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삼도봉에 올라서니
비로소 탁트인 조망이 펼쳐진다.
낮게 드리운 운해,
물결치는 듯한 산그리메, 그리고
어둠을 헤치고 일어서는 한 줄기 붉은 빛...
그야말로 말이 필요없는 풍광이다.
끝없이 이어진 데크 계단길을 만난다.
이 곳이 지리산에서 가장 긴
550계단...
도대체 어디까지 내려가는거야?
등산길에서 내리막이 길어지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내려간 만큼 다시 올라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역시 지리산이다!!!
끝도없이 켜켜이 쌓인
산그리메의 물결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오늘 지리산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준다.
요즘 운동 중 많이들 먹는 에너지젤...
휴대, 섭취하기도 간편하고
에너지도 근방 보충할 수 있어
편리하긴 한데...
맛이 너무 달다는 단점이...ㅎ
등산로 곳곳에서 자리를 잡고
자고 있는 산객들이 종종 보인다ㅋ
하기사,
새벽부터 산행하기 위해서는
밤새 이동했을테니...
돌 너덜지대가 많아 길이 만만치가 않다.
특히나 내리막에서는
무릎이 아작날 수도 있겠다 싶다.
때문에 무릎 보호대는 필수...
내 무릎은 소중하니까^^
8시 20분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한다.
연하천 대피소는
9월 1일부터 3달 예정으로
시설을 폐쇄하고 공사가 한창이다.
연하천 대피소에서
발열식품으로 아침을 먹는다.
발열식품이 따끈따끈해서 좋긴 한데
몇 번 먹으니까 질리기도 하고
무엇보다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온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차라리 집에서 밑반찬을 싸와서
대피소에서 햇반을 구입해
같이 먹는 게 낫겠다는 생각ㅎ
연하천 대피소에서 아침을 먹고
잠시 배낭을 정비한 후,
다시 벽소령 대피소를 향해 출발한다.
연하천 대피소에서
벽소령 대피소까지는 3.6km로
그리 멀지 않은 구간이다.
등산로 옆에 서 있는
커다란 바위 위에 올라본다.
저 멀리 천왕봉과 중봉, 그리고
장터목 대피소와 벽소령 대피소가
한 눈에 들어온다.
겹겹이 이어진
거대하고 장쾌한 봉우리들이
눈 앞에 시원스레 펼쳐진다.
이런 멋진 산그리메가
지리산의 가장 큰 매력이다.
10시 50분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한다.
새단장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깔끔한 외관에 하룻밤 묵고 싶은 곳이다.
벽소령 대피소에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세석 대피소를 향해 출발한다.
벽소령 ~ 세석 대피소는 6.3km로써
가장 지루하고 험난한 구간...
출발 후 약 1km 정도는
평지에 가까운 오솔길이지만
이후로는 지겨울 정도로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된다.
이윽고 선비샘에 도착한다.
이 곳에서 목도 축이고
식수도 보충한다.
지리산은 각 대피소마다 그리고
도중에 만나는 샘터에서
식수를 보충할 수가 있다.
덕분에 다른 산에서처럼
2리터 이상씩 짊어지고 걸어야 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저 멀리 펼쳐진
끝없는 봉우리들과 능선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풍광이다.
우뚝 솟은 천왕봉을 중심으로
좌측에 중봉, 우측에 연하봉 그리고
앞쪽에 제석봉과 장터목 대피소가 보인다.
언제 저 곳까지 간단 말인가?ㅋㅋ
끊임없이 반복되는 돌너덜길...
정말이지 지긋지긋하다ㅋㅋ
지리지리해서
지리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일부 산객들의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어리석은 사람이 이 산에 들어오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고 해서
지리산이라 이름 붙여졌다고...
우뚝 솟은 봉우리가
눈 앞에 가까와질수록
왠지 저 봉우리를 넘어야 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밀려온다.
영신봉과 운장바위다.
불길한 예감은
왜 이리도 잘 들어 맞는 지...ㅋㅋㅋ
올라올테면
어디 한번 올라와 보라는 듯,
끝도 보이지 않는 데크 계단이
앞을 막아선다.
영신봉으로 오르는 계단이다.
젖먹던 힘까지 쏟아부어
오르고 또 오른다.
영신봉 정상에서 보는 풍광은
가히 환상적이다.
매번 힘들고
고통이 뒤따르는 산행길이지만,
오르고 나면
'이래서 여기를 올랐구나' 하는
뿌듯한 순간이 온다.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풍광이다.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한참동안 걷던 좁은 숲길을 빠져 나오자,
드넓은 평원이 펼쳐진다.
그 유명한 세석평전이다.
매년 봄이면 수만 그루의 철쭉이
동시에 붉은 꽃을 피워내
장관이 연출되는 곳이다.
오늘의 목적지이자,
숙박을 할 세석 대피소에 들어선다.
넉넉하게 품어준
지리산의 아늑한 품 속에서
고단했던 하루가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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