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쯤되면 제주병에 걸린 게 아닌가 싶다.
백록담을 만나고 온지 불과 2달...
또 다시 비행기에 오르고 있는 내 모습을 본다.
코로나로 인해
히말라야 병을 제 때에 치료하지 못하면서
탈출구로 제주행을 택한 듯...
대를 이어 간다는 신병도 아닐진대...
어쩌면 살아 남기 위한 발버둥일지도...
이번엔 어리목 탐방로를 들머리로 잡는다.
윗세오름 대피소를 지나
남벽 분기점을 찍고,
영실 탐방로를 통해 하산할 예정이다.
제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6시 30분에 출발하는
240번 버스 첫차를 타고
어리목 입구에서 내린다.
1100도로를 건너 15분 쯤 걸어 올라가니
어리목 탐방지원센터가 나온다.
등산로 초입은
어느 코스나 별반 다르지 않은
전형적인 한라산 숲길이다.
한라산 어딜 가든
키작은 조릿대가 오랑캐처럼 점령하고 있다.
어리목 목교를 지나서
사제비동산까지 약 1.8km 정도가
어리목 코스에서 가장 힘든 구간...
하지만 관음사나 성판악 코스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까진 아니더라도ㅋㅋ
암튼~ 훨씬 수월한 편이다.
제주 시내는 폭염경보까지 내려진 가운데
푹푹 찌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숲 속은 고도가 높아서
제법 선선하다.
하지만 오르막을 오르는 등줄기에서는
연신 땀방울이 줄줄 흘러 내린다.
산행을 시작한지 한 시간 정도...
이윽고 사방이 탁 트인
사제비동산에 올라선다.
시원하게 불어주는 바람에
기분까지 상쾌하다.
이제부터는 평지에 가까운
완만한 오르막 길...
룰루~랄라~~
발걸음도 경쾌하게~~
주변 풍경도 둘러보고
뒤도 돌아보면서 여유로운 산행길이다.
제주 시내와 바다 풍경도 감상하면서
한 여름 8월의 산행을 만끽한다.
역시 고산의 날씨는 변덕스럽기 짝이 없다.
불과 몇 분전까지만 해도
화창하던 날씨가
순식간에 돌변하면서
급기야 빗방울까지 떨어진다.
오늘은 날씨가 맑다고 했는데...
또 구라청에 속은 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드디어 윗세오름 대피소에 도착한다.
어리목 탐방지원센터를 통과한지
1시간 50분만이다.
이 곳에 앉아 잠시 에너지를 보충하고
남벽 분기점을 향해 또 다시 출바~ 알~~
해발 1700미터의
윗세오름 정상석을 지나...
영실 - 어리목 코스는
겨울에 다시 와야 할 듯...
저 곳에 하얀 눈이 쌓이면...
왜 많은 탐방객들이 겨울 산행지로
영실 - 어리목 코스를 꼽는지 알 듯 하다.
짙 푸른 초록 물결 위에
군데 군데 놓여 있는 검은 바위들...
생뚱맞기 짝이 없다.
마치 이해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예술작품을 보는 듯...
아하~~ 그렇구나!!
어쩌면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신의 예술작품일지도...ㅎㅎ
일순간...
순식간에 구름이 걷히며
구름 속에 숨어 있던
뾰족 뾰족한 바위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백록담 남벽이다.
두 손에 쥐고 있던 등산 스틱을
땅바닥에 내팽개치고는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웅장한 남벽의 자태를 담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구름 속에 모습을 감춘다.
잠시 후...
오늘의 목적지, 남벽분기점 전망대에 도착해서
구름 속에 숨어 있는 남벽이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린다.
마치 숨바꼭질이라도 하자는 듯,
애간장을 태우며
구름 속에 숨었다 나타났다를 반복한다.
저 너머가 바로 백록담인데...
영실 탐방로나 어리목 탐방로를 통해
오를 수 있는 건 여기까지...
백록담에 오르기 위해서는
성판악이나 관음사 탐방로로 올라야 한다.
서울행 저녁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이제 하산을 해야 하는데...
미련이 남아서인지
발걸음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이제 영실 탐방로로 하산을 하기 위해
다시 윗세오름 대피소로 되돌아 간다.
구름 사이로 보이는 도심과 바다 풍경도
한 폭의 그림이다.
하지만 저 아래는
오늘도 푹푹 찌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겠지.
하산 중에 뒤돌아 본 백록담 남벽...
걸으며 보는 남벽은
실로 변화무쌍하다.
보는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자연의 오묘함이란...
아까는 분명 저 모습이 아니었는데...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윗세오름 대피소를 지나
본격적인 영실 탐방로를 걷는다.
한라산의 5개 탐방로 중
가장 아름다운 코스라 했는데...
역시나 헛소문이 아니다ㅎ
단지 흠이라면...
이 코스를 통해서는
백록담에 오를 수 없다는 것ㅠ.ㅠ
만약 영실 탐방로를 통해
백록담까지 오를 수 있다면
가장 많은 탐방객이
영실 코스로 몰릴 게 분명하다.
구상나무 고사목이 하얀 골격만 드러낸 채,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모습 조차
멋스러운 한 폭의 그림이다.
수직의 바위 절벽 위로 구름이 몰려 들면서
몽환적인 풍경을 만들어 낸다.
병풍바위다.
바위 절벽들이 마치 병풍을 펼쳐 놓은 것처럼
둘러져 있다고 해서
병풍바위라고 부른다 한다.
영실 코스는
봄철엔 진달래와 철쭉으로,
가을철엔 단풍으로,
겨울철엔 설경으로 인기가 높다지만,
초록 물감을 사방에 풀어 놓은 듯한
한여름의 녹음 또한 가히 만만치가 않다.
'꽃보다 녹음'이랄까...
영실 탐방로 입구에 도착했다.
이 곳의 고도가 해발 1280미터.
여기서 다시 2.5km를 걸어 내려가야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때문에 영실 탐방로를 들머리로 잡으면
버스에서 내려서
탐방로 입구까지 2.5km를 걸어 올라야 한다.
본격적인 산행도 시작하기 전에
지쳐버릴 수도...^^
들머리를 영실 탐방로가 아닌
어리목 탐방로로 잡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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