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4730미터의 추쿵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앞으로 1주일 이상 동안은
해발 4700미터에서 5550미터 사이를 오르내리며
걷고 자고 생활해야 한다.
남미나 인도 라다크 지방 등 고산지역을
수차례 여행했지만...
5000미터를 넘는 지역에서
걷거나 잠을 잔 적은 없기에
살짝 긴장이 되는 건 사실이다.
남체에서부터 매일밤 고산병 예방약이라는
다이아막스를 반 알씩 복용하고 있어서 그런지
트레킹 일정에 차질이 생길만한 큰 불편함은 없지만...
무엇보다도 식욕이 실종되다 보니
전체적으로 컨디션이 다운되어 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머리 맡에 두었던 생수병이 꽁꽁 얼어있다.
4월말인데도 해만 떨어지면
기온이 곤두박질 친다.
오늘은 드디어 3패스 3리 1베이스캠프 중
첫번째 고지인 추쿵리에 오르는 날이다.
추쿵에서 해발 5550미터의 추쿵리에 올랐다가
다시 추쿵으로 하산하는 일정이다.
내 생애 처음으로 두 발로 걸어서
5000미터를 넘어선다는 기대 속에
고산병에 대한 우려도 함께 존재한다.
가이드가 산을 오르다가 돌아서서
나를 기다리고 서 있다.
해발고도가 5000미터에 가까와지면서
숨이 차서 한걸음 떼기도 쉽지않다.
뒤를 돌아보니
어젯밤 묵었던 추쿵 마을이 성냥갑처럼 보이고
그 뒤쪽으로는 세계 3대 미봉 중 하나인
아마다블람이 마을을 굽어보고 우뚝 서 있다.
밑에서 보기에는 길이 완만해 보였는데
올라왔던 길을 돌아보니 상당히 가파르다.
게다가 고도가 높아서
조금만 걸어도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니
오르는 길이 만만치가 않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주변 풍광은
그야말로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
감탄이 절로 튀어나온다.
한국이라면 그저 평범해 보이는 산길이지만...
이 곳은 고도가 높아서
고산병이라는 무지막지한 복병이 뒤에 숨어
호시탐탐 공격할 기회만 노리고 있다.
트레커들이 언제든지 헛점만 보이면
파고들어 주저앉히고 싶은 모양이다.
높이 오를수록 산소는 줄어들고
몇 발자국 걷다 쉬기를 반복한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열심히 따라붙어 보지만
가이드와의 거리는 갈수록 벌어진다.
하지만 오르면 오를수록
눈 앞에 펼쳐지는 장엄한 비경에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바로 이 맛에
이 고생을 감내하면서도 오른다.
이번 트레킹의 목표인
3Pass(패스) 3Ri(리)와 관련해서...
에베레스트가 있는 네팔 쿰부지역에는
'세계 10대 트레킹 코스' 중 하나로 손 꼽히는
3Pass 트레킹 코스가 있다.
5000미터 이상의 고산지역인데다
난이도가 높아
상당한 체력이 필요한 코스이다.
Pass(패스)는 '높은 고갯길'을 의미하고
Ri(리)는 '작은 봉우리 또는 언덕'이라는 뜻이다.
3패스는 콩마라 패스(5535m),
촐라 패스(5330), 렌조라 패스(5415)를 말하며,
모두 해발 5400미터급의 높은 고갯길이다.
하지만 해발고도는 통일되지 않고
지도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는 듯.
3Ri(리)는 추쿵리(5550m),
칼라파타르(5545m), 고쿄리(5360m)의
봉우리 또는 언덕을 말한다.
높은 산이 없는 우리 한국에서는
1500미터만 넘어도 고산으로 취급받지만,
이 곳 네팔에서는
5500미터급의 봉우리가 언덕으로 통한다ㅋㅋ
역시 세상을 보는 눈높이와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래서 사람은 자신의 눈높이를 높이기 위해서
넓은 세상을 경험해야 한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나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가이드.
거리가 너무 벌어졌다 싶으면 멈춰서서 기다리고
가까와졌다 싶으면 다시 출발한다.
물리력은 없지만
무언의 압력에 의해
마치 억지로 끌려 가는 듯한 이 기분은 뭐람?ㅋㅋ
얼마나 걸었을까?
수 많은 돌탑들이 보이고
가이드가 배낭을 내려 놓은 채
바위에 걸터 앉아 쉬고있다.
옳지~
저 곳이 정상인가 보다 싶어
나도 모르게 두 다리에 힘이 붙기 시작한다.
가이드에게 여기가 정상이냐고 물었더니
박장대소를 한다ㅎㅎ
아직도 한참을 더 올라야 한단다ㅋㅋ
특히나 여기서부터가 길도 가파르고 험하다고.
그리고 저 너머가 내일 우리가 넘어야 할
해발 5535m의 콩마라 패스란다.
이번 트레킹 코스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고 험난한 곳이다.
게다가 콩마라 패스는 추쿵리에 비해
눈도 훨씬 많고 빙하지역도 지나야해서
고단한 하루가 될거라며 겁을 잔뜩 준다ㅋㅋ
아랫쪽에서는 까마득하게 올려다 보이던
해발 5000~6000미터급 봉우리들이
어느 순간 눈 높이를 맞추더니
이제는 발아래 놓여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서
다시 정상을 향해 오른다.
그런데...ㅠ.ㅠ
길이 없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온통 돌너덜길이다.
게다가 돌 위에 눈이 쌓여 있고
돌들이 바닥에 고정되어 있지 않아
밟을 때마다 뒤뚱거려서
잘못하다간 아래로 미끄러지기 쉽상이다.
가이드가 남긴 발자국만 따라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전진한다.
아무리 꿈도 좋고 도전도 좋지만
이 머나먼 타국 땅까지 와서
다치기라도 하는 날에는...ㅋㅋ
에휴~~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가이드가 멈춰서서
저기가 정상이라며 손짓을 보낸다.
타르초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걸로 봐서
이번에는 정상이 맞는 듯...ㅋ
마지막 젖먹던 힘까지 쏟아부어
오르고 또 오른다.
해발 5550미터 정상에 우뚝 서서
자축의 만세를 부른다.
고난을 이겨내고 묵묵히 걸어온 자만이
만끽할 수 있는 환희의 순간이다.
잠시 정상에 앉아
경이로운 주변 풍광에 빠져들어 본다.
감히 인간의 말로는 표현하기 조차 힘든
어마무시한 풍경이다.
누군가는 이런 풍광을 두고
신이 만든 예술작품이라 표현하던가?
맞는 말이다.
신 외에는 누가 감히
저런 장관을 빚을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내일 넘어야 할
콩마라 패스를 다시 한번 눈에 새기며
하산을 시작한다.
산행은 오를때 보다 하산할 때가 더 위험하다.
길이 없고 바위들이 온통 눈에 덮여 있으니
어디를 밟아야 할지 대략 난감하다.
가이드가 남긴 발자국만 따라 밟으며
조심스레 걸음을 옮긴다.
고도가 높으니
하산길도 그리 만만치가 않다.
오를 때 보다는 숨이 덜 차지만
그래도 고산은 고산이다.
정상으로 착각했던 문제의 그 지점을 지난다.
저 곳에 왜 저렇게 많은 돌탑을 쌓아두어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냐고
혼잣말로 투덜대면서ㅋㅋ
드디어 아침에 헤어졌던 성냥갑 같은
추쿵마을이 다시 시야에 들어오고...
오늘도 어김없이 아마다블람 주변으로
구름떼가 몰려와 뒤덮기 시작한다.
입맛이 없어 점심은 토마토 스프로
간단히 해결하고...
내일은 이번 트레킹 코스 중 가장 어렵다는
콩마라 패스를 넘어야 하기에
저녁은 야크 스테이크로 체력을 보충한다.
이번 트레킹의 7개 목표 중
첫번째 고지를 완주했기에
추쿵에서 맞이하는 기분 좋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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