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다녀온 후,
히말라야의 매력에 푹 빠져...
처음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꿈꿀 때만 해도
당시 계획은...
가장 대중적인 코스를 따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EBC)와
칼라파타르에 오르는 정도.
하지만 꿈이 현실화 되어 가면서
에베레스트를 언제 또 갈 수 있겠나 싶어
이왕 가는 김에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하고 돌아오는 게 낫겠다 싶은 욕심에
쿰부 히말라야 지역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고 끝판왕이라는
3패스 3리 트레킹에 도전해 보기로 한다.
인생 뭐 있어?
한번 개겨 보는거지 뭐ㅋㅋ
네팔 쿰부 히말라야 트레킹 7일째.
오늘은 콩마라 패스를 넘는 날이다.
아침 일찍 하얗게 눈으로 뒤덥힌 추쿵을 떠나
콩마라 패스를 향해 길을 나선다.
이틀밤 묵었던 추쿵 마을이
아득히 멀어져간다.
초반부터 가파른 오르막이다.
설상가상으로 어젯밤 내린 눈으로 인해
길마저 미끄럽다.
역시나...
쿰부 히말라야 지역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고
체력 소모가 많다는 콩마라 패스 명성답게
초반부터 길이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오늘은 해발 4730m의 추쿵에서
5535m의 콩마라 패스를 넘어
4910m의 로부제까지 가는 일정이다.
거리상으로는 10km 정도...
한국이라면
하루에 20km 이상도 거뜬히 걸을 수 있겠지만
이곳은 고도가 5000m를 넘는 고산지대다.
길은 산 허리춤을 돌고 돌아
겨우 사람 한 명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비좁은 산길이다.
게다가 한쪽은 아득한 낭떠러지 벼랑이고
길은 눈으로 덮여 있어 미끄럽기 짝이 없다.
한 발자국만 헛디뎠다가는
어디까지 굴러갈지 모르는 상황.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발 끝에 집중해서 걷는다.
저 비현실적인 풍경들...
도대체 어떡할겨??
오늘도 역시 가이드가 앞에서 끌어주고
나는 뒤에서 따라가기 바쁘다.
한쪽에서부터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앞서가던 가이드를 집어삼킨다.
역시나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변화무쌍한 고산의 날씨다.
도중에 서양인 커플과 가이드로 구성된
다른 팀을 만난다.
길 위에 사람이 없다보니
우리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존재만으로도 안도감이 든다.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쉬어가며...
늦어지면 눈이 내릴 수 있어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서둘러야 한다고 가이드가 재촉을 한다.
나도 서두르고 싶다.
하지만 여기는 5000m가 넘는 고산지역이다.
한 발자국 옮기는 것도 내게는 엄청난 고역이다.
모퉁이를 돌고 고개를 넘을 때마다
나타나는 이름모를 설산들과
그 주위를 양탄자처럼 떠 다니는 구름들.
몸은 힘들고 지쳐있지만
주변의 비현실적인 풍광들이
눈과 마음을 정화시켜 준다.
어느 순간부터 젊은 가이드도 힘에 부치는지
말이 없어졌다.
두 사람이 묵언수행이라도 하듯
그저 묵묵히 걷기만 한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사진 한 장 찍는 것도 고역이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위해
잠시라도 숨을 멈추면
눈 앞이 핑 돌고 곧바로 '헉헉'거리며
숨을 몰아 쉬어야만 다시 걸을 수 있다.
걸어도 걸어도
정상은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인정사정 없는 오르막을 만났다.
게다가 돌너덜지대다.
삼보일배를 하는 수행자 심정으로
한 발 한 발 힘겹게 발걸음을 옮긴다.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배웠던
시조 한 수가 떠오른다.
'태산이 높다 한들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그래... 올라보자ㅎㅎ
우리와는 반대방향으로 걷고 있는
서양인 트레커를 만났다.
정상이 어디쯤이냐고 묻자,
그저 'enjoy' 하며 동문서답하고 지나간다.
맞다!!!
이 순간을 즐기자ㅋㅋ
드디어 정상이 시야에 들어온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정상은 하얀 구름 속에 갇혀있다.
마지막 오르막이기는 하지만
저길 또 올라야 한다니
감히 엄두가 나질 않는다.
히말라야는 어느 곳이든
정상을 쉽게 내어주는 법이 없다.
마지막 오르막인데 상당히 가파르다.
그래도 눈 앞에 정상이 보이니 힘을 내본다.
반대방향에서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오고 있는 트레커들을 만난다.
오늘 하루종일 길 위에서 만나는
세번째 팀이다.
숨을 쉴 때마다
심장이 터져나가는 것 같다.
일순간이라도 숨을 멈추면
영원히 숨이 끊어질 것만 같다.
이제는 사진 찍는 것은 고사하고
물을 마시기 조차 힘들다.
드디어 정상에 올라선다.
추쿵을 나선지 4시간 30분만이다.
정상에는 수많은 타르초가
바람에 힘차게 펄럭이고 있다.
정상에 올라서니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분이다.
숨은 가쁘지만 가슴은 뻥 뚫리고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날아갈 것 같다.
거칠고 황량해 보이지만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벅찬 감동이 밀려온다.
날씨 탓인지 아니면
콩마라 패스를 넘는 사람이 많지 않은 탓인지
정상에 올랐지만
주위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
가이드에게
왜 개미 새끼 하나 보이지 않냐고 했더니
개미들은 이미 다 얼어 죽었을거라고...ㅋ
이제부터는 하산이다.
산은 오르기 보다
하산이 위험하다는 말은 언제나 진리다.
길은 가파르고
험준한 바위 너덜지대에 눈까지 쌓여 있어
여간 미끄러운게 아니다.
아랫쪽에서 '씨X' 비슷한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가이드가 미끄러져서 꼬꾸라져 있다.
외국어는 욕부터 배운다더니...ㅋㅋ
가이드가 한국인 트레커들과 다니면서
욕부터 먼저 배운 모양이다ㅋㅋ
아니면 짓궂은 한국인 트레커들이
일부러 가르쳤을 수도 있고...ㅋㅋ
다음은 내 차례ㅋㅋ
앞으로 꼬꾸라지면서
등산스틱이 바위틈에 끼어
두 동강이 나면서 장렬히 전사했다.
2020년 지리산 무박당일 성중종주를 하면서
한 아이를 객사시킨 적이 있는데
이 번이 두 번째다ㅎㅎ
하산을 마치고
콩마라 패스를 올려다 본다.
까마득해 보이는 고갯길...
이 눈 밭에서 저 고갯길을 넘었다니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눈발과 함께 바람이 어찌나 세차게 불어대는지
가이드가 바위 뒤에 쪼그리고 앉아서
점심을 먹느라 저러고 있다ㅋㅋ
카투만두에 있는 자기 방이 그립단다.
오죽하렴^^
그 심정 충분히 이해가 된다.
우리 트레커들이야 자기들이 좋아서
사서 하는 고생이지만
먹고 살기 위해 걷는 이 길이 얼마나 고단하겠어.
그 뒤쪽에는 짝 잃은 내 등산스틱이
홀로 외롭게 서 있다.
추쿵 롯지에서 점심 도시락으로 싸 온
티베탄 브레드.
빵도 식어 빠진대다 날씨까지 추워서
도저히 넘어가질 않는다.
빵 한 입 베어먹고 콜라 한 모금 들이키며
억지로 밀어 넣는 수준이다ㅋㅋ
말 그대로 살아 남기위해 먹는다ㅋㅋ
이제 다시 로부제를 향해 출발한다.
이 코스도 빙하지대 위를 걸어야 해서
그리 호락호락한 길이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군데군데 깃발을 꽂아두어
깃발만 보고 따라가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겉보기에는 바위와 자갈과 흙이 뒤섞인
황량하고 거친 사막지대처럼 보이지만
이 일대는 쿰부 빙하지역이다.
빙하 위에 흙과 자갈이 퇴적되어 형성된 지형이니 만큼
빙하가 움직이면서 지형도 바뀐다고 한다.
이제 거의 다 왔겠다 싶어 고개를 하나 넘으면
깃발이 꽂혀 있는 새로운 언덕이 나타나고
또 하나 넘으면 또 다른 언덕이 나타난다.
콩마라 패스만 넘으면
로부제는 근방일 줄 알았는데...ㅋㅋ
빙하에 밀려 내려온
바윗덩이와 흙더미가 쌓여 형성된 언덕들...
그 거친 돌너덜길을 뒤뚱거리며 걷느라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간다.
드디어 녹색 지붕의 로부제 마을이
시야에 들어온다.
아침에 추쿵을 나선지
대략 7시간 30분만이다.
난이도가 가장 높다는 콩마라 패스를
무탈하게 넘었으니
그 기쁨을 가이드와 같이 나누고 싶어
가이드에게 얼마간의 특별 보너스를 지급한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성취감에 한껏 고무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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