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동안의 트레킹 일정 중
9일을 4000미터가 넘는 고지대에서
먹고 자고 걸어야 하니
체력소모가 여간 많은게 아니다.
게다가 3Pass 3Ri 1Bc라는
이번 트레킹의 7개 목표지점에 오르기 위해서는
매일같이 5500m급의 고지를 오르내려야 하니
체력은 이미 바닥이다.
여행 중 체력관리를 위해 꼭 필요한 게
3go(고)라는데...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잘 자고 잘 싸는 문제는
어느정도 관리가 되고 있지만,
잘 먹는 문제는...
음식도 입맛에 안 맞거니와
고산지역이라 입맛이 실종되다보니
제대로 관리가 안되고 있는 상황.
매콤한 한국음식이 무척이나 그립다ㅎ
해발 5330m의 촐라패스를 넘는 날이다.
오늘은 종라를 떠나서 촐라패스를 넘고
당락을 거쳐 고쿄까지 가는 일정이다.
이미 난이도가 제일 높다는
콩마라패스를 넘어본 경험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긴장이 되는건 사실이다.
위압적으로 서 있는 촐라체 북벽이
오늘은 햇볕을 받아
속살까지 샅샅이 내어준다.
아마다블람이 이 곳 종라까지 따라왔다.
세계 3대 미봉 중 하나인 아마다블람이
종라 마을 뒤편에 우뚝 서 있다.
험난해 보이는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촐라패스를 향해서 한 발 한 발 전진한다.
콩마라패스를 넘을 때는
날씨가 안 좋아서 조망도 없고
고생은 고생대로 했는데
오늘은 날씨가 축복을 해 준다.
이제 서서히 오르막이 시작된다.
종라가 해발 4830m,
촐라패스 정상이 5330m,
고도 500m를 치고 올라야하니
그리 만만한 일정이 아니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오르막이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주변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고
길은 미끄럽기 짝이 없다.
젊은 가이드도 힘에 부치는지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아니면 내가 걱정이 되서 그런가??ㅋ
가파른 오르막길은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거친 숨소리를 토해내면서
오르고 또 오른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면
올라왔던 길들이 절벽 같은 모습으로
아득해 보인다.
뭐지?
벌써 정상은 아닐텐데...
가이드가 언덕 위에 올라서서
뒤를 돌아 나를 기다리고 서 있다.
오호라~~
일차로 제일 가파른 고개를 넘어
쉬어갈 수 있는 평지에 올라섰다.
배낭을 내려놓고
촐라체 북벽을 조망하며 잠시 쉬어간다.
박정헌과 최강식이 촐라체 북벽을 등정하고
하산하다 크레바스에 빠져
사투 끝에 살아남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박범신의 소설 '촐라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올라왔던 길을 돌아보니
무거운 짐을 머리 위에 걸치고
힘겹게 고개를 오르고 있는 포터가 보인다.
잠시 숨을 돌리고
또 다시 촐라패스를 향해 전진한다.
잠시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세계 3대 미봉, 아마다블람이
우리 일행을 지켜보고 서 있다.
거대한 빙하가 앞을 막아선다.
한편으로는 신비스럽고 경이로우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과 경외감마저 든다.
마치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내고
입을 떡 벌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공상과학 영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괴물을 보는 듯하다.
빙하 위에 올라서니
쉽게 잊을 수 없는 대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운동장 보다 넓은 빙하평원이 펼쳐지고
좁다란 눈길을 걷고 있는 트레커들이
개미만하게 검은 점으로 보인다.
앞서 간 사람들의 발자국만 따라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내딛는다.
눈 밑에는 어마무시한 크레바스가 숨어
트레커들을 노리고 있다.
곳곳에 드러나 보이는 크레바스들...
저 곳에 빠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어디까지 떨어질지 모를 일이다.
마치 악마의 목구멍을 보는 듯ㅋㅋ
촐라패스의 광활한 빙하 위에서
또 다시 추억 한 장을 남긴다.
눈과 빙하에 반사된 햇볕은
피부가 따끔거리고 눈이 멀 정도로 강렬하다.
이제 마지막 오르막이다.
저 멀리 촐라패스의 정상이 시야에 들어오고
앉아 쉬고 있는 트레커들도 보인다.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 걸음만 더...
젖 먹던 힘까지 짜내 오르고 또 오른다.
드디어 5330m의 촐라패스 정상에 올라선다.
이미 많은 트레커들이 올라와
감동과 환희를 만끽하고 있다.
올라왔던 빙하 지대를 내려다 보니
줄줄이 사탕마냥 트레커들이 일렬로 서서
빙하를 건너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다.
바위 위에 걸터 앉아
종라에서 준비해 온 행동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한다.
이제는 당락을 향해서 하산해야 할 시간.
하지만 길이 오를 때보다 더 가파르다.
말 그대로 수직으로 내리꽂는
직벽에 가까운 급경사의 내리막길이다.
게다가 길이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어
한 발자국 떼기가 무섭게 미끄러진다.
이 상황에서 손에 들고 있던 스틱은
오히려 방해만 될 것 같아 아랫쪽에 던져놓고,
옆쪽에 쳐진 철제 로프를 두 손으로 움켜잡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한 순간도 방심해서는 안되는 길이다.
그 모습을 지켜 보던 가이드가
스틱을 주워 들고 내려간다.
센스쟁이...ㅋ
고개를 돌려 내려왔던 길을 올려다 본다.
험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내리막길이다.
저 길을 어떻게 내려왔나 싶다.
무탈하게 내려온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내려올 당시에는
그렇게도 가파른 급경사의 내리막길이었는데
멀리 떨어져서 보니까
완만한 고갯길 정도로만 보인다.
산행이 어쩜 이리도
우리네 인생을 꼭 빼 닮았는지...
지금 당장은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충격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 추억거리가 되 듯 말이다.
급경사의 내리막은 끝났지만
돌너덜길은 계속된다.
뒤뚱거리고 흔들리는 바위를 밟으며 걷느라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간다.
소중한 내 무릅...ㅋㅋ
촐라패스에서 내려와 잠시 쉬어간다.
촐라패스만 넘으면
오르막은 끝날 줄 알았는데...
앞 쪽에 또 다른 언덕 하나가 버티고 있다.
언덕을 넘으니
계곡을 따라 줄곧 내리막이 이어진다.
몸은 지칠대로 지쳐 너덜너덜 해졌지만
촐라패스를 넘었다는 성취감에
발걸음은 경쾌하다.
당락의 롯지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종라를 나선지 5시간 30분만이다.
당낙에 들러 점심을 먹는다.
이 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고쿄로 가면 딱 좋으련만...
트레킹 마지막 날
루클라에서 카투만두로 돌아가는 경비행기가
제 날짜에 뜬다는 보장이 없기에
만약을 대비해 일정을 하루라도 당겨 놓는게 낫다.
고쿄를 향해 출발한다.
이제부터는 초오유 자락에서 흘러 내려온
고줌바 빙하를 건너야 한다.
곳곳에 드러난 크레바스들...
마치 입을 쩍 벌리고
먹잇감이 걸러들기를 기다리는
포식자를 보는 듯하다.
만약 저 곳에 빠지기라도 하면
몇 십년 몇 백년 후에 발견될지 모를 일이다.
역시나 하룻만에 촐라패스를 넘고
고줌바 빙하를 건넌다는게
그리 쉬운 일정은 아니다.
몸이 지쳐있다 보니 한 발자국 내 딛는게
고개 하나를 넘는 것처럼 힘들다.
왼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길래
고개를 돌려보니
헐~~ 이런 젠장ㅋㅋ
위쪽에서 돌멩이들이 연신 굴러 내려온다.
걸음아 날 살려라ㅋㅋ
이럴 땐 36계 줄행랑이 답이다.
이 고산지대에서
어디서 그런 스피드가 나왔는지
내 자신도 놀란다ㅋㅋ
이제 저 언덕을 기어 올라야 한다.
저 곳을 또 어떻게 오르나 싶어
한숨부터 나온다.
뒤를 돌아보니
거의 수직에 가까운 직벽이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흔들리고 미끄러지는 자갈 때문에
자칫 잘못 밟았다가는
몸이 아래로 내동댕이 쳐질 형국이다.
정신을 바짝차리고 초긴장을 한 상태에서
흔들리고 미끄러운 돌길을
땅만 보고 오른다.
일단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중간에 잡을 곳도 없어
바닥부터 다시 기어올라야 할 판이다.
언덕 위에 올라서자
전혀 딴 세상이 펼쳐진다.
에메랄드빛 호수를 끼고 있는
고쿄마을이다.
평화로운 풍경에 하얀 눈까지 내려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다.
진경산수화가 따로 없다.
뒤따라 오던 유럽인 트레커가
"크리스마스 인 고쿄"라 외치며 지나간다.
5월에 크리스마스라니...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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